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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가볍게

by 이혜연
가볍게, 가볍게

생각이 많아지는 날들입니다. 머리가 무거워지니 몸도 무거워지고 그 무게에 다시 마음이 짓눌리는 일이 반복되는 날들. 자꾸 아침햇살이 버거워지고 오후의 등그림자가 힘이 없이 늘어져버립니다. 달달한 당으로 에너지를 충전해 봐도, 친구들과 안부를 묻고 실없는 농담을 건네봐도 가슴이 텅 비어 마른바람만 어지러이 흩어지는 날들의 연속입니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오전 아르바이트를 다녀왔습니다. 토요일은 오전에 아이들 축구 수업이 있고 오후에 바둑과 체스 수업이 있기 때문에 엄마의 손이 덜 필요한 날이기도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혼자 출근하는 길은 일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 혼자 나들이 가는 것처럼 가볍고 신이 났습니다. 근무하는 곳에서 선생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커피도 마시면서 오랜만에 직장인 모드로 일을 해서인지 기분이 새롭습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만으로도 뭔가 한번 쉬어가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돌아오는 길엔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예보에 1mm 정도 온다고 했던 것 같아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덕분에 장대비 속에서 자전거를 탔습니다. 바람도 제법 거세게 쳐서 얼굴이며 머리가 축축이 젖는데도 그런 빗속을 자전거로 달리는 내내 뭔가 해방된 느낌도 들고 지금의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마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혼자 하늘을 날아오르는 느낌도 들었지요. 얼굴을 때리는 비가 그렇게 시원하게 느껴질 수 있다니 자연치유를 받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그렇게 한바탕 비를 맞으며 집에 도착해 아이들이 없는 거실 소파에 낮잠이불을 끌어와 쪽잠을 자고 났더니 무거웠던 세상이 새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비가 와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행복한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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