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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May 21. 2024

붕어 싸만코의 계절

붕어 싸만코의 계절

엊그제까지 바람이 제법 쌀랑해서 가벼운 외투를 챙겨 입었는데 어제, 오늘은 강렬한 햇살에 소나기를 피하듯 그늘을 찾아다니는 날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은 먹고 싶은 것도 시원하고 달콤한 것으로 바뀌는지 평소라면 잘 먹지 않을 아이스크림이 생각납니다. 정수리가 보글보글 타는 날에는 붕어, 붕어 싸만코. 

얼굴이 동글동글 얼어가는 겨울엔 붕어, 붕어빵. 

대체 언제부터 붕어에 팥을 넣어 굽고, 얼렸을까요?


아주 어렸을 때 동네에는 두 개의 점빵이 있었는데 그중 한 곳에 귀한 얼음차가 한 번씩 오곤 했습니다. 아직 도로가 깔리지 않아 온통 자갈길이었는데 얼음차가 오는 날은 어떻게 알고 동네 꼬마 모두 점빵 앞에서 진을 치고 앉아있다 차에서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를 다투어 주워 먹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네엔 냉장고가 있는 집이 없어서 마을 우물에 집집마다 김치 항아리를 담가뒀었죠. 그러면 신기하게 여름에도 시원한 물김치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우물가에서 김치도 담고, 귀한 수박도 담가놓았으며 시원한 물김치 꺼내 국수도 함께 말아먹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집집마다 냉장고가 들어오면서  한 집, 한 집 우물가에 안 나오더니 중학교 때쯤엔 거의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졌었습니다. 맛있는 추억이 많았던 곳이면서 귀신 이야기가 가장 실감 났던 곳이기도 했던 우물가. 지금은 사라져 버린 여름 풍경이 되었습니다. 


여름이 성큼 다가오는 날, 옥상에 심어둔 고추는 꽃대도 여러 개 달리고 튼실한 고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신랑이 아이들을 위해 옥상에 평상도 만들고 텐트도 설치해 준다고 해서 다음엔 석양을 보며 아이스크림을 먹어야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렸을 적 동네 사람 모두와 함께 나누었던 시원하고 달콤한 그늘이 멋진 우물가를 경험해보게 할 수는 없겠지만 올여름, 롯데타워를 등지고 빨갛게 물드는 석양을 보며 옥상 텐트에서 달콤한 붕어 싸만코를 먹을 수 있는 추억은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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