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동네 이야기는 수돗가에서 소문이 나곤 했다. 엄마가 수도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거나 배추를 다듬도 계시면 삐그덕 대문을 열고 옆집 아주머니 오셔서 내 집인 양 엄마 옆자리에 철퍼덕 앉아 같이 배추며 야채를 함께 다듬으며 동네 소식을 전해주곤 하셨었다. 마루에 앉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얼른 공터에 나가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비밀'이라면서 이야기해 주면 저녁나절에는 백 가구가 모두 아는 비밀이 되곤 했었다. 요즘은 우물가 같은 역할을 비슷하게 하는 곳이 동네 단골 카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은 텃밭도 갈 겸, 인터뷰도 있어서 아침 일찍 나섰다가 예전 살던 동네 카페 사장님 가게에 들렀다. 꽃과 커피를 함께 판매하시는데 인테리어 감각도 좋으시고 커피도 정말 입맛에 착 감기는 그런 맛을 내는 분이셨다. 언제나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걸 잘하셔서 아이들 아기였을 때 힘들 때마다 가서 꽃도 구경하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오면 친정에 가서 수다 떨고 온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지던 곳이었다. 연세가 있으신데도 여전히 건강하게 아름다운 꽃과 커피로 인사를 건네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런데 카페가 몇 년 전과 조금 달라진 게 있어서 여쭤보니 그림도 판매하시고 소품도 부수적으로 판매를 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저도 그림을 그리고 가방을 만들고 있어요'라고 했더니 그럼 내일 그림하고 가방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오래간만에 갔는데도 너무나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는데 가방과 그림을 가져오라고 하셔서 감동이었다. 오전 시간이라 근처 가정의학과 사모님과 함께 즐거운 수다타임을 가지고 서둘러 인터뷰를 하러 갔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참 묘하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 전혀 생각이 나지 않다가도 어쩌다 들른 곳에서 기회가 생길 때도 있고 오래된 인연이 끊기지 않고 필요한 적시적소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하는 걸 보면 우리는 서로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진리 같기도 하다. 그렇게 오래된 인연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텃밭에 들러 보드랍고 싱싱한 상추를 한 무더기 따서 아는 떡집 사장님, 과학 선생님, 카페 사장님께 나눔 하고 신나게 페달을 밟으며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