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바람에 여름은 아직인가 싶었는데 엊그제 산 수박이 달디 단 밤양갱처럼 맛이 있는 걸 보니 계절도 금방일 것 같은 느낌이다. 오후에 바둑을 두고 온 아이들이 수박화채를 해달라고 해서 우유에 설탕 조금 넣고 참외와 수박을 잘라 시원하게 해 주니 정말 꿀맛 같은 수박화채가 완성되었다. 맛있게 먹고 하루가 다르게 풍성해지고 있는 텃밭으로 갔다. 요즘은 텃밭에 가는 재미가 쏠쏠한데 오이가 하나씩 달리고, 가지가 크고 있으며, 상추가 정말 너무 보드랍고 맛있어 누구에게 선물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다. 더군다나 뜨거워진 햇살만큼이나 자라는 속도도 빨라서 주말에 한 번 갈 때마다 산타클로스가 된 것처럼 여기저기 직접 기른 맛있는 상추를 맛보여줄 수 있어 좋다.
엊그제 카페에 가져다 주니 유자청을, 떡집에서는 떡을 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오늘은 유자청을 넣은 고추장에 좋아하는 상추를 넣고 맛살을 더해 비빔국수를 해서 주말에 집에 있는 세입자분들에게 전화해서 가져다주었더니 매번 감사하다며 치킨을 시켜주셨다. 작은 땅에서 얻은 소소한 수확물로 인연의 그물을 더욱 풍요롭게 엮을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이 넓은 우주에 겨우 어른 다섯 걸음 정도의 작은 땅에서 얻은 걸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고 풍성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오늘부터 매주 토요일 오전에 알바를 하기로 했는데 근무해 보니 너무 좋은 곳이어서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자전거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좋은 분들과 토요일 오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지루해지고 무력해질 때마다 몸을 움직이면 의외로 좋은 일들이 감자가 열리듯 줄줄이 달리는 기분이다. 6월엔 하지가 있는 달인데 텃밭의 감자들이 얼마나 옹골진 감자를 품고 있을지 기대된다. 주렁주렁 달린 감자를 수확해서 스프를 만들어 모두와 함께 나눠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