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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받고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와 살기

by 이혜연
100억 받고 세상 제일 예쁜 여자와 살기

생성형 AI의 미래


부산 남자에 직업은 개발자. 말수 없는 집안의 늦둥이 아들.

신혼 때 남편은 컴퓨터로 말하자면 386처럼 묻는 말에 버벅거리며 열심히 몇 개 안 되는 정보를 가진 정해진 답밖에 못하던 사람이었다. 자신은 거짓말은 못한다면서 꼬박꼬박 진실만 말해 얼마나 많은 울화통을 터트렸는지 모른다. 그러다 5년 정도 됐을 때 눈치는 조금 생겼지만 정답의 근거를 찾아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기에 바쁜 상태가 되었다. 아직 안드로이드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음식을 한 후 "이거 맛이 어때?"하고 물으면 "음.. 맛있긴 한데 간이 어쩌고 저쩌고, 조금 더 간장을 넣었다면 어쩌고 저쩌고"라며 의견을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걱을 휘두르며 여자가 맛이 어떠냐고 묻는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느냐며 호통을 쳐댔다. 내가 맛이 어때?라고 묻는다면 정답은 그냥 하나야.

맛! 있! 어!!!


이렇게 주입식으로 여러 가지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교육을 시켰다.

이 옷 어때?

"어 진짜 잘 어울려"

이 신발 어때?

"와!! 구두와 옷이 자기 만나 호강하네."

그렇게 수많은 사례에 대한 답을 입력시키는 것을 반복했더니 요즘은 아주 빠른 속도로 분위기에 맞는 답을 할 수 있는 초기 AI급이 되었다.


그러던 중 남편의 능력을 테스트해볼 겸 엊그제 저녁밥을 먹으며 기습 질문을 해보았다.

"방님, 100억 받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랑 살기와 100만 원 받고 나랑 사는 것 중에 어떤 걸 고를 거야?"

그랬더니 갑자기 오류가 났는지 눈을 끔뻑끔뻑하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대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신혼 초의 어리바리 386이 나오려고 하는 걸 간신히 누르고 여러 가지 근거를 대며 100만 원 받고 나랑 사는 것을 답으로 하는 이유를 대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라고 해도 성격이나 그런 건 아직 모르는 거고, 100억이라고 하지만 당신이 없으면..."이러면서 100만 원일지라도 나를 고르겠다는 억지 이유를 대느라 애를 먹고 있는 모습이 가관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아니, 왜 100만 원을 골라?"라고 다시 힌트를 줬건만 "당신과 함께 산다면 100만 원이라도 문제가 없고... 음.. 음.."이렇게 버벅대며 오답으로 버그가 나려는 멸치 같은 신랑을 보자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래서 우는 아이 떡하나 준다는 마음으로 다시 대박 힌트를 주었다.

"아니 그럼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는 누구야?"

순간 남편의 어리둥절한 두 눈이 동그랗고 커지고 콧구멍을 벌름벌름거리더니

"응?!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 그게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아?" 하길래

눈을 왕방울만 하게 뜨고 사악한 웃음을 흘리며 다시 한번 남편에게 소리쳤다.

" 세상에서 제일 예! 뿐! 여! 자!!"

그랬더니 남편은 설마 하는 눈짓으로

"당신?!" 하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그제야 문제의 뜻을 이해한 듯 남편도 배시시 따라 웃었다.


신혼 때 386 정도의 프로그램 처리 능력을 보여주던 신랑은 결혼 10년이 지나자 초기 AI로 발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많은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찾지 못하며 자기 무덤을 깊게 파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학습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서 조금만 더 지나면 여우 수준이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때 내 간을 지키기 위해 나도 열심히 수련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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