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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경계

by 이혜연
도시의 경계

한 평 땅을 일군다는 것


단순히 일주일에 한 번 얼굴을 비추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자연 학습터가 필요했고 어른 다섯 걸음 정도의 땅이라면 하루에 만보를 걷는 정도의 일보다 우습다고 생각했다.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을 막을 마지노선으로 사람들 스스로 도시계획으로 아무도 차지하지 못하는 경계선을 땅 위에 그려놓았다. 무언가를 세우지 못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지 못하니 당연스레 값이 없는 땅이 되었고 그곳에 태초에 땅을 일구며 살던 우리의 잃어버린 유전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주말 농장이란 이름으로 한 평 땅에 자신의 이름을 걸어놓고 역시나 욕심 사납게 이것저것 씨를 뿌려댔다. 처음 3월과 4월은 의욕에 넘치는 사람들로 버려진 땅들에 활기가 넘쳐났다. 4월 말이 되어 햇살이 따스해지니 상추가 어른 손바닥만 하게 커서 거두는 기쁨이 넘쳤다. 그러다 오월 중순이 넘어가면 작물의 크기와 풀들의 크기가 같아지는 밭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 두 달 주말에 잠깐 얼굴을 비추는 일이 힘듦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공들이기에는 그깟 2천 원도 안 되는 상추를 가지고 너무 애쓰는 것이 경제 원리에 맞지 않다는 생각도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는 때인 것이다.

그 시점을 계기로 밭으로 가는 걸음 수가 달라지며 달리는 열매들의 양도 확연히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나는 욕심 사납게 고추가 가지를 펼 자리를 충분히 고려하지도 않고 서른 개의 고추를 텃밭에 심었었다. 그러다 6월 초에 가보니 2개 모종이 죽어있었다. 너무 촘촘히 심었다는 말에 4개 모종을 집으로 가져와 옥상 화분에 심어두었다. 이제 24개의 모종이 한낮의 폭염을 견디고 살아남아야 한다.


하지만 한 번씩 텃밭에 갈 때마다 인간의 소유욕의 경계선으로 버려진 땅에 난 눈부신 들꽃들과 태초의 땅을 돌보고 정성을 들였던 늙은 유전자들 덕분에 풍성해진 녹색의 밭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더없이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스멀스멀 책임감이란 것이 마음을 옥죄며 그것에 더 충실하게 임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 결과 이 땡볕에 홀로 고군분투하며 더위와 싸우고 있을 친애하는 나의 전우, 상추와 오이, 고추에게 매일 아침 20여분을 자전거로 달려 물을 주고 오고 있다. 어쩌면 인간이 차지할 수 있는 땅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고작 한 평이면 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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