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서로가 똑같은 시간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서부터 두려움과 고통, 불안과 시기에 지배당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하루를 아침에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밤늦은 시간이 그날의 출발시간이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행위에 대한 결과를 측정하는 건 어쩌면 매일 벽에 기대어 어제보다 조금 더 컸으리라는 희망을 새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감정의 파도가 요동을 칠 때가 있다. 어느 날은 자신감에 혼자 들떴다가 다음 날은 반복되는 일상에 무기력으로 바닥을 길 때도 있다.오늘을 살고 있지만 내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항상 외발로 서 있는 듯한 위태로움을 느낄 때도 있다.
이번 주 내내 가던 텃밭을 오늘 아침엔 가지 못했다. 어제 아이들 재우다 잠들었는데 애매한 시간에 깨버려서 잠을 설치기도 했고 하루 1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텃밭을 왕복하는 일도 의외로 체력소비가 많은 듯했다. 저녁밥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다 보면 발이 퉁퉁 붓는데 몸이 보내는 신호 같아서 오늘은 쉬기로 했다. 희한한 건 몸이 힘들면 마음의 균형도 순식간에 무너져버린다. 의지하고 싶고 아무것도 아닌 채로 잠들고 싶은 유혹도 깊어진다.
해의 길이를 느끼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들과 수천 킬로미터를 지도도 없이 길을 찾는 철새들, 북극성을 보고 길을 찾는 쇠똥구리들은 어디에서 신의 비밀을 알아챈 것일까. 내일이면 도착한다는 기약도 없이, 반드시 그곳에 다 달으리라는 신탁도 없이 오늘, 그네들은 어떻게 하루 치의 거리를 쇠똥을 굴리며 가고 이정표 없는 텅 빈 하늘로 길을 나서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