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꽃 집 이야기

by 이혜연
꽃 집 이야기

재건축을 한다는 오래된 아파트 후문

널따란 앞마당엔 철 따라

빨갛던 꽃들이 피고 지고


도시 매염을 견디며

노랗고 하얗게 세월을 이겨내는

그곳에

향긋한 커피를 내리는

작고 아담한 꽃 주인이 자리 잡은 지 십 년


오래된 단골의 기쁜 날에도

오가다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도

그때 그이에게 맞는 꽃으로

위로를 건넨다


화분을 갈기 위해 왔다가

이런 일이 있었느니

저런 일이 있었느니 하는

하소연 듣다 보면

아침나절이 훌쩍 지나가버려도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말

대나무숲에서 맘껏 재잘거리다 가는 것처럼

꽃을 들고나갈 때는

매연 속에서도 향기가 진하다


손님은 앉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꽃사장님은 부지런히 꽃을 이리저리 옮기며

그이의 이야기에 가끔씩 추임새를 넣을 뿐인데도


잔잔하게 위로하는 마음이

포근하게 안아주는 그 시간이 그리워

내일 또다시 커피를 마시러 왔다며

꽃이 예쁘다며

지나치지 못하고 다시 들어서는


낡은 아파트 후문

오래된 꽃집 이야기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그 여름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