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짓날은 감자 캐 먹는 날이고 보리 환갑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가 지나면 감자의 싹이 나기 시작하고 보리는 마르기 때문에 그전에 수확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주 옛날에는 이 즈음 드디어 보릿고개의 빈궁한 시절이 끝나기도 하여 동짓날처럼 하짓날도 기념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불필요한 행사가 된 지도 오래이다. 여하튼 텃밭에 감자 여덟 알을 심어 두고 감자를 캐는 시기가 다가오니 할 일없이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며칠 전 땅을 뚫고 올라온 몇몇의 감자알을 캤을 때 그 알맹이가 너무 적어 옆 텃밭의 어른들에게 비웃음을 산적이 있기에 우리 식구 모두 별 기대 없이 텃밭으로 향했다.
어제 비가 많이 와서인지 땅이 부드러워서 호미질 몇 번이면 땅속의 보물들이 얼굴을 쏙쏙 내밀어줬다. 그런데 웬걸!!! 텃밭 농사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 이번엔 호미에 걸리는 감자가 저번 농사와 다르다. 갑자기 어른 주먹보다 커다란 감자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워낙 기대가 없었던지라 우리 네 식구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와!!! 풍년이다. 풍년!!"
진짜 캐는 재미가 너무 좋았다. 이렇게 잘 생긴 감자라니.
신랑도 신이 나는지 8톤 트럭을 불러야 하는 게 아니냐며 호들갑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몇만 평 감자를 심은 줄 알겠으나 가장 허술한 농사꾼들에게 이렇게 커다란 감자 몇 알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기에 놀라움과 기쁨은 몇 배가 되었다.
이제 감자전, 감자찌개, 감자밥 모두모두 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별것 아닌데 실없는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온다.
오늘 텃밭에서는 고추 20개, 오이 1개, 가지 1개, 토마토 30알을 수확했다. 마트에 나가면 모두 해봐야 5천 원이 안될 것 같은데도 직접 심고 땡볕을 달려 물을 주고 기른 것들이라서 그런지 자부심과 함께 모두에게 자랑까지 하고 싶어 진다.
마음을 기울인다는 것, 정성을 다해 어떤 것들을 사랑한다는 건 숫자이상의 가치를 갖게 되는 것 같다. 흡사 어린 왕자의 장미꽃처럼, 텃밭 식구들은 내게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