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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Jul 12. 2024

나는, 4령 애벌레

사령 애벌레

낡은 피부

자글자글한 주름

오후 햇살에

축 늘어진 기름진 뱃살


지금껏 나는

무엇으로 살아왔던가


한시도 침묵한 적 없고

바람이 불면 시끄럽게 울어댈 뿐

스스로 껍질을 벗어던져본 적 없는

거대한 늙은 4령 애벌레


저녁이 되어서야

진정 내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

긴 밤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걸

오늘 문득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잠실의 명칭은 조선시대 때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누에는 예로부터 천충(天蟲), 즉 하늘이 내린 벌레라 여기며 매우 신성하게 여겼다고 한다. 누에는 총 4번의 잠을 자게 되는데 그때마다 1령씩 높아진다. 알에서 막 깨어났을 때가 1령이고 5령까지 누에로 지내게 되는데 5령이 되어서야 비로소 뽕잎 먹기를 멈춘다고 한다. 


누에는 나중에 누에 나방이 되는데 뽕잎 먹기를 그만두고 자신 안으로 잠식해 들어가 껍데기를 만든 후 스스로 그 껍질을 벗어던질 때라야 자신의 존재가 사실은 하늘을 날 수 있는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침에 맨발 걷기를 하려고 공원에서 스트레칭을 하는데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매미는 껍데기를 벗어던졌는지 오래된 사과나무에 매미껍질이 매달려있었다. 대견하면서도 안쓰럽고 쓸쓸하면서도 용기 있는 웅장한 그림자 덩어리가 새삼 신기하게 보였다. 변신의 순간에도 삶을 얼마나 악착같이 붙들고 있었으면 주인이 나간 자리, 빈 집터가 사람도 쓸려가는 폭우에도 여전히 나무를 붙들고 남아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지 궁금해졌다. 스스로 깨어나려고 해 본 적이 있었던가. 내 안의 것들을 믿고 깊이 침잠해 스스로에게 날개를 달 수 있는 그런 성찰을 하며 살고 있나.


시간이 흘러가며 주름과 게으름의 찌꺼기가 늘어나 행동이 굼떠졌을 뿐 여전히 뽕잎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4령 애벌레일 뿐인 것은 아닌지...


한여름. 

이제는 마음껏 세상을 날아다닐,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다음 세대를 이아나가는 매미가 새삼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지는 나는 4령 애벌레. 

아침 맨발 걷기를 하다 만난 매미의 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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