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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양철 대문을 열면

by 이혜연



고향이 있다는 건 현재 속에서 언제든 과거를 만날 수 있는 일이다. 어릴 적 뛰놀던 고샅을 지나 익숙한 양철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면 그곳은 지금에 머물고 있으면서 살아있는 옛 추억들이 함께 공존하게 되는 다차원의 세계가 된다. 수돗가에 흙 묻은 발을 씻으러 갔다가 어릴 적 엄마가 빨간 대야에 몸을 씻겨주던 기억과 만나기도 하고 잡풀사이로 피어난 봉숭아를 보다가 손톱에 빨갛게 물들였던 지난여름밤들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렸을 때 마루에 누워서 바라보던 은빛 미루나무의 윤슬 같은 반짝임들이 오래된 그날들을 떠올리게 한다. 오랜만에 온 집은 장마기간을 거치면서 담장보다 높게 잡풀이 자라고 있었다. 빈집이 사람이 사는 집보다 많아진 동네에는 가끔 골목에서 뱀이 지나가는 것도 볼 수 있어서 고향집 마당에 무성한 풀들을 보고 덜컥 겁이 났다. 신랑이 길을 만들고 청소를 해줘서 짐을 풀었지만 급하게 펜션이라도 알아보라는 오빠의 말에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이 편안한 그리움을 고향집 말고 어디서 채울까 싶다. 아침에 마루께로 올라선 햇볕 한 자락에서도 따뜻하고 애틋한 옛 시간들이 스며드는 곳. 설거지를 하다 멍하니 예전 개울가의 나무들이 바람에 노래하는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곳. 새벽 일찍, 그리고 오후에 틈틈이 마당의 풀들을 뽑았더니 제법 말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급한 성격에 장갑을 안 끼고 했더니 손에 풀독이 올라 퉁퉁 부었지만 옛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고향집이 있어줘서 이마저도 영광의 상처라고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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