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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Oct 13. 2022

내가 있던 자리

결국은 깨고 나와야 한다

내가 있던 자리


나를 에워쌌던 것들을

깨고

홀로

나와야 한다


어느 날은

온몸이 녹아내리듯

지칠 때도 있을 것이다


또 어느 밤엔

뼈가 녹듯

고통스러운 밤과

뒤엉켜

원망을 쏟아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깊이 침묵하는

여러 날을 보내던

어느 날에


더 이상 씨앗이 아닌

어엿한 나무로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될 것이다


석류는

하나가 아니었다

그 속엔 알알이 박힌

우주가 있었


가끔 내가 걸어왔던 모퉁이 모퉁이를 돌아다보면 두려울 때가 있다. 어제 했던 뒷담화와 아무렇지 않게 내 감정에 치우쳐 쏟아냈던 비난들. 그리고 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느냐는 세상 바보 같은 원망들이 씨앗이 되어 숲을 이루고 있으면 어쩌나 싶기 때문이다. 예전에 잊혀질 권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인터넷 댓글 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는데 난 권리보다 용서를 빌고 싶다.

어쨌든 나는 스스로 어른이 되지 못한 책임이 있었다.


나는 스무 살이 넘으면 가정형편이라든지 교육받은 정도라든지 세상이 갖다 대는 온갖 기준이 되는 것들로부터 나를 독립시키고 싶었다. 그런 것들이 내  삶을, 내가 세상에 태어난 진짜 이유를 찾게 해주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찾고자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야 떳떳이 세상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다. 혼자 했던 여행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혼자만의 독백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나는 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습게도 그 시간에 주로 반성을 하곤 했다.

내가 했던 말들에 대해, 나의 게으름과 시기와 나태함에 대해. 그리고 더 큰 꿈을 꾸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 자신에 대해 후회했다. 아주 아주 귀한 기회를 할 일없이 써버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주제에,

 내가 그렇게 큰 꿈을 꾸는 건 욕심이 아닐까...'


나는 홀로 떠났음에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싸질 매고  다녔고, 현재의 시간을 오롯이 나로 살아가지 못하는 덜 자란 어른이었다. 그래서 다시 쓰는 스무 살엔 아파도 힘들어도 스스로 나를 일으키는 어른으로 성장해보려 한다. 내가 일어서는 이유를, 나만의 목표를, 다시 되새기며 오늘을

최고의 하루로 살아내고 싶다.


그것이 아마도 내가 세상에 온 이유.

그리고 한 알, 한알의 석류들이 틀을 깨고 땅에 떨어지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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