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날엔 몸속에 있는 수분이 모두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면서 마음도 그에 못지않게 건조해지곤 한다. 일상의 모든 일들이 버겁게 느껴진다. 아침을 준비하는 일도 힘들고 창을 열어 새로운 공기를 들이는 일도 겁이 난다. 그냥 차갑게 식힌 실내에 스스로를 가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런 나태가 주는 건 게으름으로 얻게 된 안온한 평안보다 뭔가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재촉과 조급함이 더 크다. 뭔가 결실을 맺어야 할 것 같은데, 닫힌 문을 열고 가꿔야 할 것들이 있을 것 같은데 한 발짝 내딛기가 두렵다. 그러다 문득 서늘한 가을이 와버리면 여름을 허투루 써버린 후회와 아무것도 거둘 것 없는 서걱서걱 메말라 버린 가을을 보내게 될까 두려운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