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작은 분명 불확실성에 있는듯하다.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예측 가능한 일만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오늘이다. 날고 싶지만 저 끝이 두려워 매번 같은 자리를 맴돌게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확실한 게 없는 삶에서 흔들리지 않고 뚜렷이, 넘어지지 않고 어떤 것을 이루려는 건 헛된 욕심일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없이 심심한 하루가 요즘처럼 그리운 적이 없다. 무례한 사람을 만났고 이상한 사람을 만나더니 오늘은 도둑을 만났다. 토요일마다 아르바이트하는 병원에서, 퇴근하려고 직원 사물함 쪽에 둔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부원장님께 그 일을 이야기했더니 최근 입원한 분이 오고 나서 세 번째 분실사건이라고 하셨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며 난감해하셨다. 로비의 CCTV를 돌려봤지만 역시나 가방을 들고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카드분실신고를 하고 신분증 분실신고는 월요일에 하기로 했다. 평소 가방엔 이렇다 할 귀중품을 들고 다니진 않으니 물질적 손해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내 그림으로 만든 가방과 좋아하는 공방에서 만든 카드지갑, 인적사항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운전면허증을 잃어버린 게 못내 속상하다. 평온했던, 내내 그날이 그날이었던 날들이었는데 요즘은 잔잔한 일상에 예상치 못한 풍랑이 일고 있다. 이제 그만 평이했던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