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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Sep 13. 2024

붉은 생


"고요함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그것은 고요함으로 생긴 고요함이 아니었다.

나 자신의 고요함이었다."

             -니컬러스 스파크스의 <위시>중에서


가끔 나 자신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도착지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종종 길을 잃는 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무엇이 되기 위한 한 걸음이 아닌 언제 떠나도 완성된 어떤 부분으로서의 한 부분이 오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형태를 가진 것들의 아이러니-


우린 때때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볼 수 있는 것들도 제대로 보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외면적인 것들을 정의할 때도 분명 내가 보는 어떤 것들이 그 해석의 형태로 필터를 씌우고 그 대상을 명확하게 보지 못하게 하는 느낌도 들 때가 있다. 어쩔 때는 배운대로 그렇게 보려고 노력하며 그렇게 보아지도록 스스로 유도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기도 한다. 거대한 지구에 갇혀 물을 찾아 먼 길을 떠나며 살아가는 코끼리처럼.


내가 어렸을 때 스무 살에 사랑은 시작되고, 오십이 되면 뚱뚱하고 사는 것에 심드렁한 아줌마로 살다가 할머니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십을 넘게 살고 있는지 금, 여전히 나는 사랑이 좋다. 누군가를 생각할 때마다 뒷멀미가 빨개지고 가슴이 쿵쾅대고 온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따뜻한 바람이 폭 안아주는 그런 달콤한 느낌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십이란 시간은 저 혼자 흘러가고 나는 그냥 스무 살의 나를 그대로 데리고 왔나 보다.



도서관에서 <위시>를 몇 장 읽고 대여를 해왔을 때는 이렇게 많이 울 줄을 몰랐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젊은 여자의 사랑이야기가, 그녀가 사진에 매달린 이유들이 많은 공감을 일으켰다.


내 인생의 마지막에 데리고 갈 나는 어떤 모습이 될까.

어쨌든 나는 매일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마음먹고 시작했던 날보다 훨씬 이전에 이 고민을 한참이나 오랫동안  했었더랬다. 아마 많은 시간들을 그 답을 찾으려 애썼고,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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