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께서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세'하시며 애써 한글을 만들어주심으로 쉬게 된 오늘. 아직 별들도 사라지지 않은, 아침도 밤도 아닌 중간 세계에서 홀로 불을 켜고 그림을 그렸다.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의사 친구가 있는 왕의 재정에서 여는 My 5K 행사가 시청광장에서 오전 8시부터 시작했다. My 5K 행사는 '내가 사는 반경 5Km의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는 취지가 새겨져 있다. 친구 신랑이 전라도 지부장이기에 차량을 대절해 행사에 참석했다. 불과 3~4년 만에 행사는 대규모가 되어있었다. 나이지리아를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 참석한 외국인들과 다양한 기업에서 후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행사는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동안 해외 강의가 있을 때마다 사비로 강의를 다니는 친구와 토요일마다 노숙자분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친구 신랑은 언제나 여유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리드해 갔다. 아이들과 느지막이 도착해 아쉽게 걷는 행사는 하지 못했지만 친구가 챙겨준 음식과 선물들로 가방이 가득 찼다.
오전 8시에 시작한 행사는 12시 조금 넘어 끝이 나고 근처 효창공원으로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갔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묘소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문화 번영을 주장하시던 그분의 일기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있었으면서도 잠들어 있는 곳도 모르고 있었다니 새삼 무심한 무지가 부끄러울 뿐이다.
행사가 끝날 때쯤 사진을 하나도 찍지 못한 게 생각나서 뒷정리하는 모습을 급하게 담아보았다. 효창공원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효창공원에서 김구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용문 시장으로 갔다. 새로운 곳에 가면 재래시장을 꼭 들러보는데 생각보다 아담하고 작은 규모였다. 이것저것 볼 것도 많은데도 잘생긴 열무에 반해 총각김치를 담그기로 했다. 그런데 욕심 사납게 열무뿐만 아니라 고들빼기와 쪽파도 너무 탐이 났다. 전라도 아주머니답게 예쁘게 생긴 김치 재료를 탐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치는 것이 불가능해 모두 사버리는 객기를 부렸다.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이 분명한 내 성향 덕분에 집에 오자마자 쉬지도 않고 재료 손질에 들어갔다.
고들빼기는 흙을 씻어 뿌리 부분의 검은 부분을 제거한 뒤 소금물에 염장하고 돌로 눌러두고 열무와 쪽파는 손질해서 두었다. 가을 걷이 할 때 싸게 나온 빨간 고추를 베란다에 말려둔 게 있어서 넣고 손수 담근 맛있는 멸치젓으로 간을 했다. 무려 3시간이 넘게 혼자서 김치를 담그고 나니 다리도 아프고 힘도 들었지만 양념도 맛있게 되고 신랑이 좋아하는 고들빼기김치도 담글 수 있어서 뿌듯한 하루였다. 하루동안 걷기 대회에 참석하고, 공원을 산책했으며, 시장을 구경하고, 김치 3가지를 담글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새벽 3시 30분이라는 시간이 주는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