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잠깐씩 아르바이트했던 곳에서 종종 연락이 와서 저번주에는 제법 많은 시간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냈다. 쳇바퀴 돌듯 아이들 하굣길만 왔다 갔다 하다가 지하철도 타고 자전거로 낯선 길을 달려 다른 사람들을 만나니 재미도 있고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느낌도 들었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텃밭을 자주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봄의 땅보다 가을의 땅은 단출하긴 하다. 이제 깨어나기 시작하는 봄햇살은 하루가 다르게 식물을 성장시키지만 가을은 햇살도 차가워져 더디게 대지를 키운다. 일주일 만에 간 텃밭은 곳곳에 늙은 호박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고 고구마를 수확한 자리에 겨울 시금치 씨앗이 빼꼼 싹을 들어내고 있었다. 우리 밭은 배추와 무, 당근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여름 햇살보다 더디지만 알차게 속을 채우며 자라나는 모습에 더 응원하게 된다. 다만 벌레들이 배춧잎을 너무 먹어대서 친환경 살충제를 좀 뿌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일교차가 많이 벌어지면 서리도 곧 내릴 것이고 밭은 마지막 배추를 모두에게 주고 나면 긴 휴식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햇살을 가득 머금은 늙은 호박으로 달짝지근하고 시원한 호박식혜를 만들어 긴 긴 겨울밤의 허기를 달랬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그런 저녁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