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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끝

by 이혜연
오후의 끝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자연이 주는 즐거움과 감동을 따라갈 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야외활동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에 간 곳은 양평에 있는 산음휴양림입니다. 집에서 2시간여를 달려 구불구불 산길을 지나면 깊은 산속 방갈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매표소에서 음식물 쓰레기봉투와 쓰레기봉투를 구입해서 올라오니 산 귀퉁이 아늑한 자락에 따뜻한 숙소가 우리를 반겨줍니다.


일 년을 하루로 비유하자면 이맘 때는 늦은 오후 정도일까요? 햇살마저도 서늘해지는 산그늘. 따뜻한 차 한잔이 몸과 마음을 녹이며 스며듭니다. 아침 일찍 고요한 산속을 천천히 걷습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듯 산은 침묵 속에 있습니다. 자박자박 걷는 걸음이 이제 막 잠자리에 든 정령들을 깨울까 두려워 한걸음, 한걸음 무게를 줄여보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은 채 소란스러운 발자국 소리를 남기게 됩니다.

다행히 정령들의 젖줄인 계곡물은 여전히 넘치는 생명력으로 산을 가로지르며 아직 잠들지 못한 자들을 위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주변의 낙엽 길을 살포시 밟아 소리를 죽이며 늦은 오후의 산책을 마무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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