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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는

by 이혜연
옛날 옛적에는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던 때엔 겨울이고 여름이고 산은 놀이터 중에 하나였다. 겨우내 아궁이를 데워야 했던 시절이라 늦가을부터는 정지(부엌)에 소나무 잎을 잔뜩 쌓아두고 마른 가지들을 함께 거둬와 쌓아 놓아야 군불을 지필 때 요긴하게 쓰였다. 참깻대도 불쏘시게로 좋았지만 갈퀴로 긁어 소나무 가지로 이음새를 만들어서 머리 한 짐 가득이고 오던 가리나무만큼 쓰임이 많은 것은 없었다. 동네 사람 모두 추운 겨울을 지내야 했기 때문에 근처 산들은 지금처럼 낙엽이 쌓일 틈 없이 깨끗해지곤 했다. 그래서 초겨울쯤엔 아직 어린아이들도 어른들을 따라 산에 올라가 엄마가 해주시는 나무봇짐을 이고 와야 했다. 그것도 안 되는 아이는 버려진 나무라도 끌고 와야 자기 몫을 해낼 수 있는, 그런 겨울이었다. 모두가 추웠고 그래서 더 뜨겁게 살았다.


지금처럼 정해진 길로만 다니는 산길이 아니었다. 아직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 남겨진 낙엽들이 있을 확률이 높았기에 더 깊은 산으로 걸음을 옮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겨울잠을 준비하는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경계를 넘어 고요한 침묵 속을 사박사박 걷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풀숲에 가려져있던 요정의 마을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신비한 고요가 그곳엔 있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겨울산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나무를 해올 일도, 그 길을 벗어나 요정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던 어린 마음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춥다고 한다. 아이들과 한국체육고등학교 수영장에서 다이빙수업이 있어서 버스로 갈까 하다 자전거로 이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집을 나선 지 5분 만에 자전거를 선택한 것을 후회했다. 동장군이 휘두르는 칼날에선 장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둘째를 태우고 가는 길은 앞에서 불어닥치는 바람의 압력과 뒤에서 누르는 무게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추운 날 패딩 안에선 땀이 줄줄 흘렀다. 그렇게 도착한 수영장에서는 30여 명의 학생들과 8분 정도의 선생님들이 다이빙 수업을 위해 모여있었다.


두 시간이 소요되는 프로그램은 한 시간은 매트와 트램펄린에서 지상훈련을 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수영장에서 다이빙 수업을 했다. 추우면 한편에 마련된 온천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고 나와 다시 줄을 서서 다이빙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집 두 아이 모두 다이빙은 처음이라 긴장했지만 친절하신 선생님들 덕분에 아주 재밌었다며 내일과 모레 수업에 대한 기대로 한껏 달아올랐다.

어릴 적, 내가 겨울산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의 겨울 수영장은 색다른 경험으로 신세계를 열어줬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체육고등학교 다이빙 수업- 지상훈련, 수상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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