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추울 거면 눈이라도 와서 슬쩍슬쩍 내다보는 세상이 새하얗게 빛나주면 좋으련만 차갑게 굳은 바람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살갗을 휘젓고 지나간다. 그래서 몇 겹을 입어도, 옷깃을 아무리 여미어도 가슴이 시려온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활동을 하던 일이 엄마에게만 힘든 게 아니었는지 어젯밤부터 갑자기 둘째가 고열이 났었다. 첫째는 다른 방에서 아빠와 재우고 새벽 1시붙터 시간마다 깨서 둘째를 살피는데 3시가 조금 안돼서부터는 열이 심상치 않았다. 잠자는 아이 깨워서 약을 먹이고 게토레이도 마시게 했다. 새벽 5시까지 찬수건으로 이마를 식혀주고 팔다리를 주물러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렇게 새벽 내내 둘째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더니 6시 때쯤 겨우 38도까지 열이 떨어졌다. 새벽엔 39.6도까지 올라간 터라 겁이 덜컥 났는데 다행히 조금 떨어진 걸 보고 안심이 되었다. 신랑과 첫째 아침을 차려주고 둘째에겐 죽을 끓여먹인 후 병원에 다녀오니 독감이란다. 이런... 어쩐지 바람이 너무 싸늘하더라니. 예방접종까지 했지만 찬바람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독감을 피하지는 못했다. 기왕 이렇게 추울 거라면 눈이라도 호강할 수 있게 하얀 눈이라도 내려주시지 흑탕물같은 진회색 도시의 골목길을 칼바람이 두려워 온몸을 잔뜩 말아쥔 채 종종걸음을 치는 모습으로 걸어가는 오늘, 새삼스레 을씨년스러운 겨울에 심통이 난다.
사락사락 백설기 같은 사락 눈이나, 포근포근 면화처럼 따스한 함박눈이나, 퐁퐁퐁 마른 가지마다 꽃을 피우는 포슬눈이 내려준다면 어쩌면 조금 따스한 겨울이 되지 않을까. 그런 눈이 아니라도 추운 이 밤이 지나면 모두에게 가슴 따뜻해지는 그런 겨울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