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창문과 현관문을 열었다. 청소를 위해 겨울바람을 기꺼이 안으로 들인 것이다. 따뜻한 실내를 위래 꼭꼭 잠가두었던 문들이 오래되면 바깥바람을 무서워하게 만들고 갇혀있게 만들기도 한다. 행여나 지금의 따스함을 빼앗길까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 현재의 상태가 편하기 때문에 새로운 바람을 들이는 것이 겁이 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나이 오십이 넘은 일상도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들이 더 이상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계속 품게 된다는 점에서 이와 비슷하다. 강산을 다섯 번이나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시간 동안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굳게 품었던 많은 것들은 이제 자동적으로 나의 외피가 되어 체온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함이 되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어제를 반복하며 살아도 그럭저럭 살아지는 오늘이 된 것이다. 그러니 환기를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새로운 꿈은 꾸지 않을 수도 있다.
꽃이 피는 봄과 과일을 성장시키는 여름과 열매를 거두는 가을, 하얀 눈꽃의 위로가 있는 겨울을 한 두해 겪어본 것은 아니지만 현재를 살면서 느끼는 계절은 언제나 새롭다. 그런 새로움을 낡은 습관에게만 맡겨두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내 속에 묵은 것들을 청소하려면 나 스스로 문을 열고 청소를 해야겠지. 어지럽게 쌓아두고만 있는 계획들은 차곡차곡 제목별로 분류를 해놓고, 버리지 못했던 안 맞는 옷들은 재활용품으로 보내야 한다.
먼지로 뒤덮여 읽지 못한 내일의 약속들은 깨끗이 닦아 눈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읽어내려 가슴에 새겨야 잊지 않게 될 것이다. 1월도 어느새 중순이 넘어버렸다. 이번 해에는 흔하디 흔하게 세워두었던 신년계획도 세워두지 못했다. 매년 계획을 세웠지만 어느 해에도 모두 달성하지 못했기에 다시 반복된 습관 같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지금 되돌아보니 그마저도 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일상이 이정표마저 없는 안갯속이나 다름없이 된 것은 아닐까 후회가 된다. 그렇게 나태해져 버린 어제를 보내고 나니 훌쩍 지나버린 시간들이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지금이 오늘을 환기시키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남녘엔 벌써 붉은 동백이 한창이라니 늦지 않게 움직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