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연수만 120시간을 받은 나는 아직도 운전을 못하고 뚜벅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걷는 걸 좋아해서 불편한 건 없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을 다녀야 할 때는 역시 운전을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버스를 타기 위해 셋이서 종종걸음을 치기도 하고, 하차벨을 누가 누를 것인가를 두고 형제가 눈치싸움을 하는 것을 보자면 이것도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왜 여행도 고생했던 여행지가 추억이 더 많이 남잖아요?
오늘도 아이들과 서바이벌게임을 하고 집으로 가려고 버스를 탔습니다. 오후 6시. 퇴근하는 직장인으로 가득 찬 버스 안은 정말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잘 버틸 수 있을까 살짝 걱정하고 있는 사이 할머니 한 분이 자리를 양보해 주셨습니다. 괜찮다고 사양을 해도 어린아이들이 앉아서 가야 한다며 아이들을 앉혀주셔서 감사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좌석에 앉혔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작년부터 소아암 환우에게 머리카락을 기부하고 싶다며 머리를 기르고 있습니다. 둘 다 어깨 선을 살짝 넘기고 있어서 머리를 묶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보는 사람들은 여자아이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좌석을 양보해 주신 할머니도 오해를 하신 건지 갑자기 "아휴, 아이들이 정말 예쁘네요. 엄마가 백점엄마야."그러시는 겁니다. 그러더니 연달아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들이 낫지. 남자애들 키워서 뭐 해? 이렇게 예쁜 딸 둘을 낳다니 엄마가 아주 만점 엄마야."
자리를 양보해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아이들이 듣는 바로 앞에서 남자아이의 쓸모없음을 이야기하시니 민망해서 "저희 아이들은 남자 형제예요." 그랬더니 "엥? 이렇게 머리가 길고 예쁜데?"그러더니 내리실 때까지 아무 말씀도 없이 후다닥 내리셨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여자애들은 구박덩이가 되는 경우가 더 많았고 저만 해도 친척들이 놀러 와도 3살 아래 동생에겐 용돈을 줘도 전 한 번도 용돈을 받아본 적도 없이 차별을 받고 자랐는데 어느새 시대가 변해서 이젠 남자아이들이 역차별을 받는 느낌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슴도치 엄마인 저는 어느 집 딸들 부럽지 않게 우리 똥그리들이 사랑스럽고 예쁩니다. 그러니 애꿎은 시선으로 하는 편협한 걱정은 마음속에만 가둬두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