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의 칼 끝이 매섭다. 속이 빈 것들은 그야말로 죽음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쓰레기가 날리고 생명이 없는 빈가 지는 하얗게 질려 봄이 와도 싹을 틔울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회귀하듯 자신의 처음을 향해 떠나갔다. 하지만 돌아가도 텅 빈 늙은 집 밖에 없는 우리는 식어버린 도시에 그대로 남았다. 오전부터 간헐적으로 눈이 내리고 있고 차가운 바람이 아직 떠나지 않은 이들이 있는지 살펴보려는지 대문을 두드리며 순찰을 돈다. 덕분에 나가지 않을 이유가 생겼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고 먹고 싶은 걸 해 먹었다. 정오의 햇살에 기대어 잠깐 커피를 사 오다 집으로 오는 길을 빙 돌아왔다. 춥긴 하지만 눈이 내리고 있어서 걷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잠깐의 온기에도 쉬이 녹아내려 없어 지기에, 이 순간이 아니면 하얀 축복을 맞이하기 위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하기에 걸음을 늦추며 눈을 따라 걸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을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겨울이 정성스레 꽃 피우는 하얀 풍경을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시 눈이 쌓인 거리를 기웃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