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풀밭 위의 점심 식사

by 이혜연
풀밭 위의 점심식사

어제와 같다는 말은 얼마나 나태하고 게으른 죽음의 말인지 요즘 봄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놀랍도록 많은 변화가 아침과 낮사이, 당신이 잠들고 한눈파는 사이 일어나는지 바람이 잠깐 지나가고 그 끝에 환하게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석촌호수 둘레길을 걷는 요즘, 갇힌 호수가 무색하게 자연은 시시각각 물꼬를 터서 봄을 펼쳐놓고 있다. 계절의 그늘 어느쯤에 작은 자리 하나 놓고 앉아있으면 무한한 시간이 유한한 육체를 훑고 무심히 흘러 새롭게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경이로운 노동의 현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거대한 존재의 발끝아래에서 잠시 쉬다 보며 강 건너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다 하나같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작은 것들의 아우성이 각박한 생의 발버둥처럼 느껴져 힘겹기도 하다.


꽃은 피었지만 아직 겨울인 채로 우리는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욱 이 겨울의 끝이 자연의 섭리처럼 모든 것들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봄으로 이어질지 확신하지 못하는데서 오늘의 절망이 있는지도 모른다. 섣부른 날들의 외침이 갈증을 일으키는 뜨겁디 뜨거운 여름으로 이이 지지 않고 아름답게 꽃을 피워 벌들의 춤들로 이어져 열매를 맺는 가을의 풍성함을 가져오길 기도하는 마음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끊임없이, 끊임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