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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Aug 25. 2024

재래시장에 가는 날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었던 시절(2017년 겨울)

 작은애가 문제집을 풀고 있어요. 처음 문제집을 풀 때 작은애 내복이 엉덩이에 걸쳐져 있어서 팬티가 살짝 보였었는데 문제집 세 장을 다 풀고 나니까 아이 내복이 발목에 간신히 걸려있네요, 맞아요. 공부하기가 너무 괴롭고 싫어서 구르는 동안 바지가 저절로 조금씩 벗겨진 거예요.   

   

 저도 그럴 때 있어요. 하기 너무 힘들고 싫은 업무를 마치고 나니 머리 가르마 부분에 동그랗게 원형으로 탈모가 생긴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고요,      


 하여튼 문제집 세 장을 풀어야 게임을 할 수 있는 규칙상 주말 아침에 우리집에서는 문제집을 풀기 싫어서 징징대는 투덜거림이 끊임없이 흘러나와요.    

 

 우리는 매주 재래시장에 가요. 시장에서는 계절을 팔아요. 요새는 시장에서 사과랑 감을 많이 팔더라고요. 좀 비싸긴 해도 매생이가 아주 맛있고요. 저번에는 달래도 사서 먹었어요. 쓰고 매워서 애들이 아주 질색을 했어요. 머리카락처럼 짙은 갈색에 긴 물미역 다발도 사서 살짝 데쳐서 먹었고요.    

  

 시장에 가게 되면 우리는 항상 도는 코스가 있어요. 가서 입구에서 호떡을 사먹고(2,000원 지출), 다음 골목 도너츠 집에가서 꽈배기와 팥도너츠와 찹쌀 도너츠(5,000원)를 사서 먹으면서 시장 구경을 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금잉어빵(2,000원)을 사 먹으면서 차로 돌아오는 거예요.     

 

 저는 강화도 약초라는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에 관심이 많아요. 입을 짜-악 벌리고 팔다리를 사방으로 쭈욱 뻗은 채 바짝 말라버린 개구리 묶음과, 김밥을 쌀 때 쓰는 김말이 두 칸 당 한 마리 꼴로 잘 펴서 말린 지네 묶음 같은 것을 구경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거예요. 영지버섯, 홍화씨 가루, 산수유 열매 같은 것도 있어요. 저는 거기서 뭐 살게 없는지 늘 궁리를 해보는데요, 없어요. 개구리를 끓여서 먹을 자신이 없고, 지네는 갈아서 먹으... 안 되겠어요. 그래도 다음에는 안동 마를 살 거예요. ‘마’야 흔하니까 어디서 사도 그만인데요, 그곳 앞을 지날 때마다 제가 관심이 있다는 것을 들켜서 늘 여자사장님이 “어서오세요.”를 하시는데 구경값을 내야할 것 같아서요. 늙은 호박, 진짜 박, 박으로 만든 전등... 물건을 사게 되면 그 핑계로 찬찬히 가게 구경도 하고 싶어요. 구경을 하게 되면 영업을 당해서 울금 같은 건강식품이랑 막 이런저런 것도 먹어보게 되겠지요.     


 뻥튀기 가게도 빼먹을 수 없어요. 그 앞에 다섯 개 정도의 간이의자를 놓고 대기하는 사람들이 주욱 앉아있어요. 뻥튀기 기계는 다섯 대 정도 돌고 있고요, 짐작하시겠지만 그 앞을 지나갈 때는 다들 긴장을 해서 빨리 걸어가요. 전에 앞에 가는 잘 아는 남자가 너무 늦게 걸어서 ‘뻥이요’를 두 대나 맞은 적이 있어요. 그래도 미리 경고를 다 주시기 때문에 갑자기 날벼락을 맞고 혼이 빠질 만한 일은 없어요. 밤도 튀겨주고, 쌀이랑 누룽지도 튀겨주세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구수한 냄새 때문에 군침이 고여요. 특히 누룽지 튀김은 바삭바삭하고 아주 맛있잖아요. 일주일에 한 번 쉬시는데 전에 문 닫은 가게 앞에서 찬찬히 구경을 해보니까 어떤 분이 뻥튀기와 관련된 시를 창작해서 붙여놓으셨더라고요, 구경하는데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떡집 아이가 있어요. 많이 봐야 고1정도 되었을 그 남자아이는 손이 아주 야무져요. 가서 볼 때마다 랩으로 시루떡을 착착 포장하고 있어요.      


 “어서 오세요, 5,000원이에요, 안녕히 가세요.”

      

 다 하는데 묘하게 새침해요. 불친절한 것도 아니에요. 할 말을 다하면서 그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그래서 좋아요. 우리 남편도 그래서 좋대요. 잘 웃거나 친절하거나 시장에서 만나는 상인에게 기대하는 서글서글한 모습은 없는데 이상하게 태도가 산뜻하고 깔끔해요. 그 아이 만나는 재미가 좋아서 우리는 꼭 떡을 그 집에 가서 사요.      


“지나갈게요.”      


쩌렁쩌렁한 소리가 들리면 얼른 비켜줘야 해요.     


 오늘은 점심 식사 시간이 다 되어서 어떤 청년이 쟁반에 담긴 보자기를 덮은 식사를 떡집 아이에게 갖다 주는 것을 보았어요. 식사를 기다렸던 모양인지, 아니면 멀리서부터 무거운 식사를 들고 온 식당 청년을 맞이할 때에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건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얼른 그 쟁반을 받는데도... 새침해요. 대상이랑 약간 거리를 둔 달까? 그런 태도가 뭔가 몰라도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만약 잘 웃고 서글서글한 아이가 떡을 파는 집이 있다면 우리는 그 집에도 좋아라 하고 다녔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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