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렇게 컸니? 그래도 이는 좀 잘 닦으렴.
2024.06.22
큰아이와 둘이서 치과에 다녀왔습니다. 이가 아프다고 해서 몇 개월만에 치과에 갔다가 의사선생님께 치아 관리를 똑바로 하지 않는다고 많이 혼났습니다. 물론 여기서 혼쭐이 난 건 제가 아니었지만 아이 옆에 서 있는 이빨 썩은 애 엄마도 시종일관 안절부절 못하고 쩔쩔매게 되는 거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운전을 잘 못하기 때문에 번화가에는 차를 가져가지 않습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오랜만에 버거킹 햄버거나 먹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요. 한 시간 후부터 먹으라고 했으니까 집에 가서 먹으면 되겠네.
버거킹 앱을 살펴보니 할인 쿠폰이 몇 개 있었습니다. 주문하려고 키오스크에 메뉴를 입력해보니 한 번 주문에 한 개 쿠폰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실 쿠폰을 다 써서 여러 번 주문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창피하다고 할까봐 한 번 주문할 때 최대치로 할인을 받으려고 주문 내역에 메뉴를 넣었다 뺐다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아이가 그러면 여러 번으로 나누어서 주문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진짜? 그래도 돼?
저는 신이 나서 여러 번으로 나누어 햄버거 세트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주문한 햄버거를 여러 번 가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햄버거를 낱개로 여러 번 주문하다보니 손잡이가 있는 큰 종이봉투가 없이 각각의 작은 봉투에 햄버거를 받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손 가득 세 개의 봉투를 쥐고 나머지 한 손에는 콜라들을 들었습니다.
손이 아파서 못 들고 있겠다. 그리고 냄새 나서 이걸 들고 어떻게 버스를 타지?
저는 손에 쥔 것들을 놓칠까 봐 힘을 꽉 주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이런 바보 같은 내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까 마음이 쓰였습니다. 아이가 자기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하면서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잠시 뒤에 아이는 큰 비닐봉투를 가져왔고 우리는 차곡차곡 햄버거들을 그 안에 넣고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손잡이를 꼭 묶었습니다.
잠시 뒤 버스가 도착하였습니다.
아이와 앞뒤로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떤 엄마와 꼬마 아이가 탔습니다. 자리가 없어서 서 있던 꼬마가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더니 큰아이가 그분들에게 여기 앉으시라는 말도 없이 느릿하게 일어나 버스 손잡이를 잡았습니다.
햄버거는 엄마 줘.
아이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느라 눈에 띄게 거북목이 된 아이가 한 손에는 햄버거가 잔뜩 든 비닐봉투를 들고 한 손으로는 버스 손잡이를 꼭 쥐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쩐지 슬퍼지고 대견하기도 해서 마음속으로 가만히 속삭였습니다.
언제 이렇게 컸니?
그래도 이는 좀 잘 닦으렴. 엄마도 치과 의사 선생님이 무섭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