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사는 법

꿀떡을 좋아했던 남편

by 알로

명절이 가까워지면서 알록달록 예쁜 떡을 구경하고 주문하다보니 옛날 생각이 납니다.


예전에 프랑스에 체류했을 때 파리 15구에서 살았거든요. 아이들이 국제 학교에 다니다보니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야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한국 식료품점인 K마트 단골 손님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아이들 학교에 보내는 간식으로 떡을 자주 싸줬습니다. 냉동 떡을 사다가 실온에서 한 시간만 녹이면 말랑말랑해지니까 바쁜 아침에 세 칸짜리 통에 두 개씩 넣고 약간의 과일까지 싸주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서 밥을 먹이고 도시락과 스낵을 두 개씩 싸고, 교복을 챙기고 스포츠 수업이 있어서 수영복이라도 챙기려고 하면 정말 눈알이 팽팽 도는 것 같이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아이들 스낵을 싸고, 그 다음에 할 일이 뭐더라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남편이 소리도 없이 다가와 내 귓가에 대고 “나는 왜 떡 안 줘? 나도 떡 줘.”라고 불평을 했습니다. 저는 얼마나 놀랐는지 머리가 천장에 닿도록 펄쩍 뛰고 “아니, 사람이야, 호랑이야, 아침부터 난데없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그래? 자기, 나도 떡 한 개도 안 먹었어. 이거 정말 비싸다고!”라고 신경질을 내면서 부엌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날 서양미술사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들른 한인마트에서 남편 말이 생각이 나서 바람떡, 꿀떡, 송편을 잔뜩 샀습니다.


남편은 반기지도 않고 “떡이나 하나 먹을까?” 하면서 바깥에 송편을 한 봉지 꺼내놓았습니다. 저는 핸드폰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락거리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살짝 얼어있는 송편을 입 안에 넣고 녹여 먹었지요.


'아차, 내가 혼자 너무 많이 먹었구나.'


남편은 한참 뒤에 거실로 나와서 “꽝꽝 언 떡은 녹여서 먹어야지. 이걸 어떻게 먹었니? 이러다 또 이빨 부러진다." 어쩌고 하면서 시무룩하게 조금 남은 떡을 먹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 간식으로 떡을 싸면서 남편에게 “회사에서 먹게 당신도 하나 싸줄까?”하고 물어보니까 남편은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심드렁하게 “그러든가...” 라고 말했습니다. 이 호랑이는 원래 서식지가 경상도 깊은 산 속 어드메이기 때문에 절대 솔직하게 “응응, 줘. 먹고 싶어. 쟤네보다 하나씩 더 싸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러든가...” 이렇게 점잖게 말할 뿐이지요. 그렇지만 나는 그 순간 커다란 호랑이가 좋아서 꼬리로 바닥을 탁탁치는 소리를 분명하게 들었습니다.


'이렇게 떡을 좋아했구나.'


어쩐지 그가 짠해보여서 마음이 조금 아팠습니다.


“다녀올게.”


문을 신나게 닫고 나가는 호랑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진심을 담아 저는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돈 많이 벌어 와~ 호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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