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의 대표곡을 정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대중예술은 발표 전에 최대한 많은 지인에게 작품을 드러내고 의견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일찍 들려줄수록 실수도 빨리 발견하고 발매 일정을 의논하는 일이 앞당겨지는데, 문제는 들려줄 결심이 서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곡을 수없이 수정하다 보면 객관성을 잃고 부족함에 허덕이게 된다. 정신적 피로로 하던 일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을 때,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 한 문장을 떠올린다.
‘작품은 구석에서 홀로 익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생명 없는 작품이 혼자서 어떻게 달라지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나는 때로 벼의 머리가 고개를 숙이듯 음악이 스스로 성장하는 듯한 힘을 느낀다. (간절함에서 나온 바보 같은 상상이겠지만 말이다)
후에 다양한 의견을 들었는데 그중 한 친구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넌 샌드위치의 잼 같은 존재야.”
이런 작고 귀여운 말을 들으면 작은 새의 발자국처럼 마음이 가벼워진다. 앨범 준비 과정이 미뤄질 때마다 나의 능력 부족을 탓하게 되지만, 가만히 감정을 떼어 놓고 바라보면 어느샌가 지나가 있다. 또한 예기치 못한 때에 달고 상큼한 칭찬을 들으면 일부러 시간을 조금 떼어 머릿속에서 그 말의 맛을 천천히 음미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는 꿈이 아니구나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