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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대 51

<kilburn> 앨범 에세이

by 지슈

작년 나는 익숙한 세상을 뒤로하고 런던 음악학교로 떠났다. 낯선 문화 속에 도착한 날부터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과장된 말과 행동으로 호감을 사려 했고 그 과정에서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은 한국에 대해 궁금해했고 나는 친근하게 농담처럼 말했다.
“한국 사람은 보통 급해. 반대로 느린 건…. 아마 인도 사람? 보통 약속 시간도 잘 안 지키고 엄청 느려!”


하필 그 자리에 인도계 뿌리를 둔 친구가 있는 줄은 몰랐다. 그제야 나는 지금껏 인종을 구별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작은 세상 속에 살았음을 깨달았다. 나중에 거듭 사과했고, 친구는 너그럽게 이해해 주었지만 큰 실수 앞에서 사람은 한없이 작아지기 마련이었다.


그 후로도 비슷한 사건을 겪으며 나는 너그러움과 이해심을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발휘하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 음악을 배우며 몸의 모든 땀구멍이 열린 듯한 감각으로 음악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는 법도 배웠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이런 변화를 좋아해 줬고 내가 준 진심을 눈덩이처럼 굴려 다시 되돌려 줬다. 서로 인생의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나를 향한 의심과 불안, 슬픔이라는 적군이 닥쳐올 때면 그들은 나의 성벽이 되어 대신 싸워줬다. 그때 내가 마주한 세상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좋은 세상’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요즘 만나는 사람들은 내향형이 거의 8할쯤 된다. 고유해야 할 인간의 성격마저 산업화된 건 아닐지 생각에 잠긴다. 그들은 집에 혼자 있을 때 제일 좋다고 말한다. 절망은 마음을 사리게 했기에 더 이상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않고 사랑을 적당히 하며 사는 것 같다.


나도 여전히 부르기 힘든 이름이 있다. 내 인생을 슬픔 49 대 51의 기쁨이라 표현하고 싶은 이유다. 슬픔으로 숫자 하나 더 기울지 않도록 도와준 그들과 함께한 시간을 내게 가장 편안한 표현 방식인 음악에 담는다.

나의 경험이 지금처럼 세상에 위로가 아주 많이 필요한 때,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쉽게 이해받지 못하는 이들의 감정을 분명 어루만져줄 거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좋은 세상’을 노래한다.

8.31 지슈 <kilburn> EP 발매합니다. 많이 들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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