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다시, 캔디 테이블 옆에서

기적은 언제나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by 운조


그 아이는 늘 엄마 손을 잡고 왔다. 아빠의 셔츠와 정장을 맡기기 위해 방문한 엄마 옆에서, 캔디 테이블 옆 작은 의자에 올라앉곤 했다. 두 발을 동그랗게 모으고, 눈높이에 놓인 캔디들을 차례로 훑어보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이거 하나 더 가져가도 돼요?”

가끔 그렇게 묻곤 했고, 엄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하나만. 그리고 뭐라고 해야지?”

“Thanks.”


수줍지만 또렷한 목소리, 작은 손에 쥔 사탕 하나, 입가에 머금은 미소 하나. 그 장면은 오래도록 내 가게의 풍경 속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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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렀다. 유치원생이던 아이는 어느새 프롬 드레스를 수선하러 왔고, 또 몇 해 뒤에는 첫 면접을 앞두고 바지를 맡겼다. 나는 바늘로 그 아이의 성장과 시간을 꿰매왔다. 옷자락마다 남은 내 손길은 단순한 수선이 아니라, 인생의 한 페이지를 다듬는 일이었다.


어느 날 아이는 면접용 바지를 찾아가며, 캔디 테이블 위에 작은 동전 몇 개를 올려놓았다. 코러 하나, 다임 둘, 패니 하나. 초콜릿 하나 값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수년의 기억과 감사의 무게였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바느질은 생존의 기술을 넘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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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떠오른다. 이민 초기, 시어머니가 내게 건넸던 말.

“바느질만 잘해도 굶지는 않는다.”


그 말은 처음엔 생존의 조언이었지만, 지금은 내 삶의 철학이 되었다. 아이들의 단추를 달고, 드레스를 고치며, 나는 작은 밑줄을 삶에 그었다. 수선이란 헌 것을 감추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정리해 주는 일이었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아름다움을 낳고자 하는 욕망이 불멸을 추구한다”라 했다. 내가 매만진 옷자락은 결국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그 순간의 빛과 온기를 오래도록 간직하게 된다. 그것이 내 바느질이 가진 조용한 불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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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문을 열고, 캔디 테이블 위를 채운다. 젤리, 킷캣, 그리고 언제나 인기 있는 스니커즈. 누군가의 첫 무도회, 첫 면접, 첫 “Thanks”가 이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말 대신 동전 하나가 내 마음을 울린다.

그 작은 진심들, 작은 수선들이 쌓여 만든 삶.


그렇게 이어지는 기억과 마음이야말로—

기적이 아니면 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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