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작은 기적
어릴 적 실과 시간엔 손바느질부터 배웠다. 바늘에 실을 꿰고, 반듯한 박음질을 연습하고, 세발뜨기며 감침질 같은 바느질 기초를 배웠다. 그때는 그 모든 게 단지 숙제를 위한 기술쯤으로 여겨졌지만, 이제 와 돌아보니 그건 내 삶을 관통하는 첫 단서였다.
그 시절 나는 실을 바늘에 끼우는 것조차 서툴러 종종 엄마 앞에 숙제를 들고 갔다.
“이거, 엄마가 좀 해줘요…”
엄마는 말없이 내 책상 앞에 앉아 바느질을 시작하셨다. 덜컹거리는 바늘 소리, 천을 가르며 움직이던 손끝의 섬세한 움직임, 무엇보다도 엄마 손등에 자리 잡은 굳은살.
그 밤, 완성된 바느질 과제는 내 손끝이 아닌, 엄마의 손끝에서 피어난 작은 기적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재봉틀로 앞치마를 만드는 숙제가 주어졌다. 그 무겁고 덜컹대는 기계 앞에 나는 여전히 서툴렀고, 겁이 많았다. 바늘이 빠르게 오르내리는 그 소리가 무서웠고, 천이 틀어질까 조마조마하며 도망치고만 싶었다. 결국 그 숙제 역시 엄마의 몫이 되었다.
결과는 그럴싸했다. 선생님은 내가 솜씨가 좋다며 학교 커튼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해달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끝내 가지 않았다.
‘나는 그걸 직접 만든 적이 없으니까요.’
그건 부끄러움이자, 정직함이었고, 또 어린 나름의 자기고백이었다.
그 시절의 나에겐 바느질이 ‘남의 일’처럼 느껴졌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 모든 손끝의 기억들이 오늘의 나를 지탱하는 기초가 되어 있었다.
이민 초기, 시어머니는 내게 말했다.
“바느질만 잘해도 미국에서 굶지 않아.”
그때는 그 말이 그저 위로 같았다.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건 예언이었다.
남편이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미국행을 결심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 인생의 나침반을 잃은 기분이었다. 안정된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낯선 땅으로 떠나는 일은 상상 그 이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한국에 남았더라면, 지금쯤 연금을 받으며 친구들처럼 여행도 다니고 여유 있게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에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고, 이민을 후회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한가한 삶도 며칠이 지나면 금세 권태로워지는 법.
내 주변의 은퇴한 친구들은 여행도 어느새 지루해지고, 뭔가 허전하다고들 말했다. 반면 나는 매일 실을 꿰고 천을 만지며 작은 바느질을 해낸다. 그것은 생활이자 기도였고, 다시 살아내는 방법이었다.
나의 큰시누이는 여든이 넘어서도 여전히 바느질을 놓지 않으신다. 누군가에게는 취미겠지만, 우리에게 바느질은 삶 자체였다. 실과 바늘이 우리를 지탱하고 이어주는 힘이었다.
어느 날, 손님이 바지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단추 하나만 달아주세요.”
미국 사람들은 단추 하나 다는 것도 서툴러 수선을 맡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서 자란 우리는 참 손재주가 있지.’
실과 시간에 배운 박음질과 뜨개질, 가정 시간에 익힌 재봉과 요리까지. 그 모든 ‘생활의 기술’들이 이국 땅에서 내 생존의 토대가 되어주었다.
요즘 세계를 휩쓰는 K-문화의 저변에는 분명 우리 민족 특유의 손끝 감각이 숨어 있다고 믿는다. 디테일에 강하고, 꼼꼼하며, 무언가를 정성껏 만들어내는 손. 그 손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우리의 문화를 세계로 밀어올렸을 것이다.
뇌출혈 수술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친구가 조심스레 물었다.
“바느질은 아직도 할 수 있어?”
나는 단호하게, 그러나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보다 더 잘해. 바늘을 잡을 수 있는 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놀랍게도, 내 손끝의 감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실을 끼우고, 재봉틀 바늘을 갈고, 천을 밀며 박음질하는 모든 과정이 뇌를 자극하고 정신을 깨웠다. 바느질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내 몸을 살리는 치유 행위였다. 마치 끊어진 신경을 실로 꿰매듯, 흐트러진 마음을 한 땀 한 땀 다시 엮듯.
그때부터 나는 매일 재봉틀 앞에 앉는다.
작업을 시작할 때면 문득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내 어린 시절, 엄마가 바느질 숙제를 대신해주던 밤.
나는 이불 속에서 재봉틀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고, 그 밤의 소리는 지금까지도 내 귓가에 아련히 남아 있다.
이제는 내가 재봉틀 앞에 앉아, 그 소리를 내고 있다.
엄마의 손끝에서 시작된 바느질은 내 손을 거쳐, 오늘도 누군가의 옷자락을 고치고 있다.
바느질은 나를 살렸다.
그리고 이제야 안다.
그때, 엄마가 내 숙제를 대신해준 것도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살아갈 길 위에 깔아준 첫 실밥이었음을.
기적이 아니면 뭐겠어요
가을 가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