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의 친구, 그리고 내 안의 민주주의

『How Civil Wars Start』 제4장을 읽으며

by 운조



정치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어린 나이에 공무원이 되었고, 윗선의 지시에 따라 묵묵히 일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길이라 믿었다.

그 시절, 나는 의문보다 순응을 먼저 배웠다.


그렇게 조용히 따르며 살던 어느 날,

한 장면이 나를 멈춰 세웠다.


지방 출장에서 돌아오던 길.

하늘은 잿빛으로 내려앉았고, 비는 곧 억수로 쏟아졌다.

터미널 근처 골목을 지나던 그때, 낯선 함성이 빗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비에 젖은 거리 한복판에서,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대학생 시위대였다.


나는 우산을 든 채 발걸음을 멈췄다.

그들이 왜 그렇게 외치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이상하리만치 그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 틈에서,

익숙한 얼굴 하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젖은 머리칼 아래 단단한 눈빛.

내 친구, 그녀였다.


나는 대학 대신 곧장 공직에 들어섰고,

그녀는 학업을 이어가며 다른 세계를 살고 있었다.

서로의 삶은 멀어졌지만,

그날, 우리는 빗속에서 다시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했다.


그날 이후, 내 안에 조용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었던가?”


그 질문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나라가 바뀌었고, 삶의 무대도 멀리 이국이 되었다.

하지만 정치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그날 이후 멈춰 있었다.


나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다.


2021년 1월.

TV 화면 속, 의회가 침입당하던 그날.

나는 다시 그날의 풍경을 떠올렸다.

질서의 이름으로 침묵하던 나.

그리고 비를 맞으며 외치던 친구.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 무너지는 민주주의


이번 학기, 『How Civil Wars Start』라는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는 과제가 주어졌다.

한국어판이 없어 어렵게 원서를 구해 읽었다.

처음엔 단순한 과제라 여겼지만,

이 책은 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 사회의 미래를 꿰뚫는 통찰을 안겨주었다.


Barbara F. Walter는 말한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만큼 견고하지 않다고.

내전은 실패국가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정치 체제가 불안정한 ‘아노크라시(anocracy)’ 상태에 빠지고,

사회가 분열되고, 제도에 대한 ‘희망’이 사라질 때—

그 어디서든 가능하다고.


그중에서도 제4장 “When Hope Dies”,

‘희망의 상실’은 내전의 전조가 된다고 말한다.


“In the 1990s, peaceful protests had a 65 percent success rate…

But since 2010, the success rate has dropped to 34 percent.” — p.92


“1990년대에는 평화 시위의 성공률이 65%였지만,

2010년 이후에는 34%로 떨어졌다.”


미국 사회에서도 점점 사람들이

제도 안에서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게 되는 모습을 본다.

시위, 청원, 투표—

그 모든 참여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감각.

그 감정은 체념으로, 혹은 분노로 번진다.


“If the losing side believes that it will never gain or regain power,

then hope disappears.” — p.94


“패배한 집단이 다시는 권력을 얻거나 되찾을 수 없다고 믿게 되면,

희망은 사라진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2021년의 그날로 돌아갔다.

선거 결과를 믿지 못한 시위대가 의회를 습격했고,

그 분노는 단순한 선동이 아니라

‘이 시스템은 더는 우리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절망에서 비롯되었다.


그날, 나 역시 불안했다.

‘총이라도 준비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스쳤다.

내전의 가능성까지 조심스레 입에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과민반응이 아니었다.

Walter가 말한 내전의 징후들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정치는 설계가 아니라, 희망을 줄 수 있는가


“All of the democracies that experienced civil war between 1960 and 1995

had majoritarian or presidential systems.

None of them were based on proportional representation.” — p.95


“1960년부터 1995년 사이 내전을 겪은 민주주의 국가는

모두 다수제 또는 대통령제를 채택했으며,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이 문장을 오래 곱씹었다.

다수제와 대통령제—

이긴 쪽이 모든 걸 가져가는 구조.

반복해서 선거에서 패배한 집단,

이민자, 유색인종, 사회적 약자에게 정치는

어느 순간부터 희망이 아닌 체념의 영역이 된다.


“Ethnic factionalization in majoritarian systems

makes elections even more fraught.” — p.95


“다수제 체제에서 민족 간 분열은

선거를 더욱 위험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계속 지기만 하는 선거, 반복되는 소외.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투표 대신 분노를 선택하게 만든다.


정치는 단지 제도의 설계가 아니다.

그 제도가 누구에게 희망을 주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내 목소리가 들린다’는 감각이 사라지는 순간,

정치 제도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내전은 느리게, 조용히 다가온다


“By the time average citizens are aware that a militant group has formed,

it is often older and stronger than people think.” — p.97


“일반 시민들이 무장 조직의 존재를 인식할 무렵이면,

그 조직은 이미 오래되었고 훨씬 강력해져 있다.”


내전은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지 않는다.

프라우드 보이스, 오스 키퍼스 같은 극우 무장조직들은

의회 습격 이전부터 수년간 활동해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은

그들이 이미 거대한 존재가 된 뒤에야 실감했다.


“Leaders may not even be aware they are creating this security dilemma.” — p.99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안보 딜레마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자극적인 언행으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동안,

사회의 균열은 깊어지고,

불신은 무력보다 먼저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


다시, 희망을 세울 수 있을까


책의 마지막 장에서 Walter는 이렇게 말한다.


“To fulfill the promise of a truly multiethnic democracy…

we need to shore up our democracy, move out of the anocracy zone,

and rein in social media.” — p.225


“진정한 다인종 민주주의의 약속을 실현하려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아노크라시 상태에서 벗어나며

소셜 미디어를 통제해야 한다.”


“This will give us a chance to avoid a second civil war.” — p.225


“이렇게 해야 우리는 제2의 내전을 피할 기회를 얻게 된다.”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공동체 안에서 ‘내가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감각이다.


나는 정말 대변되고 있는가


『How Civil Wars Start』는 말한다.

내전은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

희망의 실종에서 시작된다.


제4장 “희망이 사라질 때”는,

단지 내전의 조건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해졌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다시 묻고 싶다.


나는 정말 이 사회 안에서

대변되고 있는가?


그 대답이 “아니오”라면,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정당이 아니라, 구조다.


구조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바뀌는 날,

우리는 다시,

평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봄처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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