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내 손에 안긴 세계

잃었다가 되찾은 기억, 그 빛나는 조각들

by 운조


손에 쥐어진 폰이 다시 빛을 띤 순간, 나는 생각보다 더 조심스럽게 그 화면을 어루만졌다.

마치 오랜 병에서 회복한 친구를 대하듯이.

전원을 켜자 알람이 먼저 나를 반겼다.

변한 건 없었고, 여전히 아침 7시.

여전히 같은 소리.

하지만 나는 그 진동에 담긴 의미를, 이제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다.


검은 화면 속에 갇혀 있던 세계가 다시 펼쳐졌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잠시 침묵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읽다 멈춘 전자책도, 메모해 둔 아이디어도, 답장하지 못했던 메시지도

거기, 내 손바닥 안에서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이 기계에게 맡기고 살아왔는지를, 또렷하게 알게 되었다.

폰이 고장 났던 3주 동안, 나는 메모를 종이에 적었고, 약속 시간을 수첩에 새겼다.

답장 대신 전화를 걸었고, 사진 대신 눈으로 더 오래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불편함’ 속에서 나를 회복하고 있었음을.

기계가 잠시 꺼진 시간은, 오히려 나 자신에게 다시 연결되는 통로였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나는 300불을 들여 폰을 고쳤다.

조금 비싸다 싶었지만, 그 안에 담긴 ‘나의 세계’를 포기할 수 없었다.

수리된 폰은 반짝이는 화면으로 새것처럼 돌아왔고, 속도도 전보다 빨라졌다.

그런데도 나는 이상하게도, 전처럼 함부로 손가락을 놀릴 수 없었다.

그 안에 담긴 ‘나의 세계’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쉽게 외부에 나를 의지해버렸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다시 스크린을 들여다본다.

뉴스를 보고, 사진을 찍고, 메모를 적고, 알람을 설정한다.

그러나 매일 아침 알람이 울릴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지금 이 진동은 또 한 번 나를 흔들어 깨우는 신호일까?


“기억하라, 네 삶은 기계의 속도보다 느린 것이었다.”

“기억하라, 네 마음은 화면보다 깊은 곳에 있다.”


이제 나는 다시 삶을 ‘저장’하지 않고, 삶을 ‘기억’하려고 한다.

스크린 너머가 아닌, 눈 앞의 사람을 바라보려고 한다.

진동이 울리기 전, 내가 먼저 깨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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