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안의 가시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운조



새벽은 고요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요즘의 새벽은 고요하지 않았다.

눈 속 어딘가에서 작은 가시가 꿈틀거리듯,

날카로운 통증이 나를 깨웠다.

모래알처럼 사소해 보였지만,

그 고통은 모래보다 깊고 집요했다.

눈꺼풀 안쪽에서 삶의 균형을 흔들며

잠든 나를 붙잡아 흔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라고 여겼다.

밤마다 스마트폰을 오래 붙잡고 있었으니

눈이 시리고 뻑뻑한 건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불편은 날마다 깊어졌다.

순간마다 찔러오는 가시는

마치 “너무 오래 달려왔다”는 경고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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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못해 안과를 찾았다

의사는 내 눈 속에 숨어 있던 작은 이물질을 조심스레 꺼내며 말했다.


“눈에 먼지나 알갱이가 들어가는 건 흔한 일입니다.

대개 눈물이 씻어내 주지요.

하지만 눈이 건조하면 그 작용이 무뎌집니다.

작은 먼지조차 남아, 가시처럼 눈을 괴롭히는 겁니다.”


짧은 설명이었지만 오래 맴돌았다.

눈물이 마른다는 것은 단순히 건조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세상을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통로가 막히는 일,

그 막힘이 통증으로,

그리고 삶을 멈추게 하는 경고로 변하는 것이었다.


진단결과

내 눈은 안구건조증이다.


안구건조증은 결코 드문 병이 아니다.

성인 다섯 명 중 한두 명이 겪을 만큼 흔하다.

특히 하루의 대부분을 화면 앞에서 보내는 현대인에게는

이미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질환이다.


그러나 흔하다고 해서 결코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눈물이 부족하면 눈 표면에 미세한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가 쌓이면 각막 손상으로 이어진다.

드물지만 감염이 겹치면 시력 저하,

심지어 실명까지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사도 분명히 짚어 주었다.


지인은 걱정스레 내게 말했다.

“안구건조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결국 각막이 손상되고, 시력을 잃을 수도 있어.”

처음엔 과장처럼 들렸지만,

돌이켜보니 과장은 아니었다.

흔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질환 ―

그 말의 무게를 이제는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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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을 나서며 나는 내 눈을 떠올렸다.

눈은 단순히 사물을 비추는 창이 아니었다.

내가 보고, 쓰고, 배우며 살아온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강의와 글쓰기, 메시지와 뉴스,

쏟아지는 빛과 글자들이 하루 종일 내 눈을 두드렸다.

나는 그 무게를 외면한 채,

몸이 보내는 작은 SOS를 모른 척 지나쳐왔다.


눈 안의 가시는 나직이 속삭였다.

“잠시 멈추라. 너 자신을 돌보라.”

그날 이후 나는 가시를 불편으로만 보지 않았다.

몸이 내민 경고이자,

나를 지켜내려는 작은 외침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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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나는 작은 습관부터 바꾸었다.

밤에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스무 분마다 창밖 먼 풍경을 바라본다.

이른바 ‘20-20-20 법칙’ ―

20분마다, 20피트(약 6미터) 떨어진 곳을, 20초간 바라본다.


인공눈물 몇 방울,

따뜻한 찜질 몇 분,

그 사소한 돌봄이 눈을 조금씩 회복시켰다.

습도를 조절하고, 바람을 직접 피하며,

눈을 감고 쉼을 주는 것만으로도

가시는 서서히 힘을 잃었다.


생활의 편리함은 쉽게 놓을 수 없지만

편리함과 건강 사이에는 반드시 균형이 필요했다.

안구건조증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었다.

삶의 속도를 조율하라는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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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안의 가시는 불편의 얼굴을 하고 나타났지만,

결국 나를 돌보게 만든 은밀한 선물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정보의 바다를 향해 눈을 여는 일도 소중하지만,

눈과 몸에 쉼을 주는 시간이

그에 못지않게 귀하다는 것을.


흔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질환, 안구건조증.

그 작은 가시는 오늘도 내게 속삭인다.

삶은 언제나 균형을 원한다고.

눈을 감아야만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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