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사과,미처 익지 않은 아름다움에 대하여

아직은 덜 익은 위로

by 운조


> 아직은 푸른 사과.

덜 익었다는 건,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뜻.




가을 저녁, 낡은 동네 길을 걷다 보면 어김없이 늙은 사과나무 한 그루와 마주하게 된다. 가지마다 달린 사과들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붉게 익어 탐스럽게 빛나는 것들도 있지만, 여전히 푸른빛을 품은 채 단단히 매달린 사과들이 더 많다. 어떤 건 바닥에 떨어져 상처 입은 채 뒹굴기도 한다. 그 풍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면, 그것은 마치 우리네 삶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처럼 다가온다.


붉은 사과는 성공과 완숙의 상징 같다. 반면 푸른 사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브런치 작가로 첫발을 내디뎠던 나는 그 푸른 사과였다. 단단하고 깊은 문장으로 여운을 남기는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며, 서툴고 조급한 나 자신을 마주했다. 하지만 그 푸른빛이 부끄럽지 않았다. 언젠가 달콤한 향을 품게 될 날을 꿈꾸고 있었으니까.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직 삶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섣불리 무언가를 정의내리지 말라”고 썼다. 삶은 정해진 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익어가는 과정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직은 파란 사과’라는 말은 묘한 위로가 된다. 덜 익었다는 건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고, 시간이 충분히 남았다는 증거이며, 지금 이 순간도 삶의 긴 여정 속 한 장면이라는 다정한 선언 같아서다.


누군가는 일찍 붉게 물들고, 누군가는 바람에 먼저 떨어진다. 또 다른 누군가는 더 늦게 익어 가장 깊은 맛을 낸다. 모든 흐름이 옳다. 삶에 정답이 없듯, 익어가는 과정에도 정해진 모양은 없다. “괜찮아, 너는 아직 파란 사과야. 파란 것도 사과야.” 누군가 건넨 이 한마디가 여전히 마음속에서 울린다.


가을바람은 푸른 사과를 흔들지만, 결국 그 열매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덜 익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깎아내릴 필요도, 조급해할 이유도 없다. 푸른빛으로 흔들리는 이 시간 속에서 조금 더 머물러도 된다. 언젠가 가지 끝에서 붉게 빛날 순간이 오리라. 지금 이 순간 역시,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한 삶의 한 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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