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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랑하는 이들을 마주 보는 일.

by Kafka


(설령 미래의 내가 죽더라도) 너를 낳는 건 멋진 일이야. 마히토.

영화는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이 한창 진행중인 1943년의 일본 , 전쟁의 참상 속에서 어머니를 잃는 소년 마히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로부터 1년 후, 마히토는 아버지와 함께 전쟁의 피해가 심한 도쿄를 떠나 어머니의 고향인 우츠노미야시로 이사 간다. 아버지는 일본의 오랜 전통에 따라서 어머니의 동생이자, 마히토의 이모인 나츠코와 재혼한다. 전쟁으로 인한 어머니의 죽음. 새로운 고장에서의 적응하지 못하는 학교생활. 새로운 가정의 형성까지. 소년 앞에는 혼란스럽고 부조리한 현실이 놓였다. 소년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악의를 품고 길가에 돌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내려찍는다. 그로 인해 새어머니인 나츠코는 마음의 상처를 얻는다.


어느 날. 나츠코가 실종되는 일이 발생한다. 과거부터 존재했다던 탑에서 온 왜가리는 나츠코를 되찾기 위해서는 자신을 따라 탑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한다. 자신이 나츠코를 상처 입혔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마히토는 나츠코를 되찾기 위해서 미지의 탑 속으로 모험을 떠난다. 탑 속의 세계는 과거의 큰할어버지라는 존재로부터 만들어졌다. 현실과 닮은 듯 다른 이 탑의 모험 속에서 마히토는 소녀시절의 어머니인 히미를 만난다.


큰할아버지는 마히토처럼 소년의 나이에 부조리한 세상에 상처받고 이 탑에 들어온 듯하다. 그는 외계에서 온 운석에서 미지의 능력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하여 탑을 세우고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려 노력한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어떠한 악의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그로 인해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순수한 세계이다. 와리와리가 이런 그의 이상을 대변한다. 순수하고 무해하여서 악의를 품을 수도 없는 생명체, 그러기에 누구도 상처입힐 수 없는 생명체를 그는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큰 할아버지의 세계에도 악의와 부조리는 존재한다. 펠리컨과 앵무새이다. 펠리컨과 앵무새는 각각 자연과 인간세계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악의를 의미한다. 순수한 와리와리를 먹이로 삼아서 살아가는 펠리컨은 자연 속에서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보여준다. 자신들만의 사회를 구축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앵무새들은 인간세계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악의를 보여준다.


히미는 이런 세계에서 큰할아버지의 염원을 받들어서 와리와리를 지키는 수호자이다. 하지만, 죽어가는 펠리컨의 절규에 ,

"우리 역시 아무런 이유 없이 이 세상에 끌려왔고,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와리와리를 먹을 수밖에 없다고. 이 외에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냐고"

마히토가 대답하지 못하듯. 큰할아버지와 히미역시 이 세계 속에서도 악의 없는 순수한 세계란 존재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큰할아버지는 펠리컨을 방관하면서 , 또는 앵무새들과의 협상 속에서 자신의 불완전한 세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이상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기에 마히토가 지신의 과업을 물려받아서 언젠가는 아무런 악의도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이샹향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큰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제안한다. 자신의 뒤를 이어서 이 탑의 세계를 악의가 깃들지 않는 세계로 만들어주기를.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세상으로 만들어주기를. 하지만 마히토는 큰할아버지의 그런 제안을 거절한다. 마히토는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설령 부조리한 세상 속이더라도) 친구를 만들어갈 거예요. 나츠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갈 거예요.

마히토의 답변에 따라서 탑 속의 세계는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린다. 탑 속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마히토와 히미는 탑 속의 세계가 무너져 내림에 따라서 각자의 시간대로 돌아가야 한다. 마히토는 어머니인 히미에게 자신과 함께 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히미의 답변 역시 마히토의 답변과 동일하다.


(설령 미래의 내가 죽더라도) 너를 낳는 건 멋진 일이야. 마히토.

미야자키 하야오는 은퇴를 번복하고서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실 없이 전달했다. 설령 삶이 부조리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동시에 그는 겸허히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들이 설령 현실을 담았어도. 그건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는 가벼운 허상인 이상에 가까울 수도 있다고. 자신이 평생 고뇌해 온 이상을 향한 모든 길. 그리고 그 길 속에서 나온 모든 작품들이 무너져내려 버린 큰할아버지의 세계처럼 헛된 것일 수도 있다고. 삶은 원래 그러한 법이라고.


무너져 내리는 세계 속에서. 마히토와 히미의 마지막 선택이 사랑인 것처럼 이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마주하는 것이라고. 그는 영화 제목 그대로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답을 자신의 이야기로 아주 직설적으로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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