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책 상징 읽기
글·그림 존 에이지 · 옮긴이 권이진/불광출판사
<사자 자격증 따기>, <화성에서 살기>, <스탠리가 그린 거야>, <어린 산타>, <밀로의 모자 마술>을 지은 사랑 받는 그램책 작가이다. 그가 지은 책들은 뉴욕타임스 선정 최고의 그림책, 미국 어린이도서관협회 선정 주목할 만한 어린이책으로 뽑혔으며,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 후보작에 오른고 보스턴글로브혼북상을 받기도 했다.
책의 한가운데에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벽이 있다. 벽의 왼쪽엔 사다리를 든 아이가 있고 오른쪽엔 코뿔소, 호랑이 같은 사나운 동물들이 있다. 왼쪽의 아이는 벽이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며 벽돌 하나를 주워 들고 벽의 빈 틈을 메우러 사다리를 오른다. 아이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왼쪽 세상엔 점차 물이 차 오른다. 아이는 벽 오른쪽에 사는 거인을 무서워하며 경계하느라 자기가 있는 세상에 물이 얼마나 높게 찼는지, 자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지 못한다. 마침내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오른쪽의 거인이 벽 너머로 아이를 집어 올려 벽 오른쪽에 안전하게 내려 놓는다. 거인은 여전히 자신을 두려워하는 아이를 멋진 오른쪽 세상으로 안내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WALL IN THE MIDDLE OF THE BOOK(책 가운데에 있는 벽)”이다.
책 표지는 붉은 벽돌로 쌓은 벽으로 가득하다. 벽 너머에서 무시무시하게 생긴 거인의 손이 이쪽으로 내려와 있다. 그 아래 작은 아이가 걸어간다. 거인이 아이를 해치려는 듯해 보이나 표지 그림의 의미는 책을 다 읽어야 알 수 있겠다.
면지에는 책의 원제와 같이 펼침면 가운데에 벽이 세워져 있다. 면지를 넘기면 속표지엔 벽 오른쪽에 코뿔소가 벽을 노려보는 듯한 그림이 있다.
첫 그림이다. 벽 왼쪽에는 온통 몸을 꽁꽁 싸맨 작은 아이가 사다리를 들고 벽을 향해 걸어가고 있고, 벽 오른쪽엔 커다랗고 사나워 보이는 동물들이 벽을 향해 서 있다.
아이는 벽이 저쪽의 위험으로부터 막아 주어서 벽 이쪽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벽 오른쪽엔 동물이 더 늘어났으며 벽 왼쪽에 관심을 가진 듯 보인다.
그런데 아이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왼쪽이 사실은 안전하지 않다. 물이 점점 차 올라 아이가 위험하다. 아이는 자신의 위험을 모르는데 벽 오른쪽의 동물들은 뭔가에 깜짝 놀라 달아난다.
아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벽 저쪽의 거인이다. 거인이 자기를 잡아먹을 거라고 생각하여 거인이 이쪽으로 오지 못하도록 벽을 높이 쌓아올렸음을 알겠다. 그런데 아이는 벽을 튼튼히 하는 일에만 집중할 뿐 정작 자기 발 아래까지 닥친 위험은 알아채지 못한다.
불어 오른 물이 발에 닿아서야 자신이 위험에 놓인 걸 안 아이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벽 저쪽에 있던 거인이 벽 너머로 손을 내밀어 아이를 구해낸다.
아이는 자신을 구해준 거인에게 고마워한다. 그런데 곧 자신이 벽을 너머에 와 있는 것을 알고는 당황해하며 거인이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 물에서 건져낸 거라고 의심한다.
거인은 아이를 안심시키며 자기가 사는 멋진 세계로 아이를 데리고 간다. 아이는 지금껏 무서워서 벽을 쌓고 살던 거인이 사는 세계에서 동물들과 함께 기쁘게 뛰어논다.
그림을 좀더 깊게 들여다보고 상징적 의미를 파악해 보자. 주인공 아이는 우리의 모습이다. 행여 다치지 않을까 머리에서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 남들이 나를 해치지 않을까 경계하며 높이 마음의 벽을 쌓고 사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편견만 가득하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으로 남을 판단하기 일쑤다. 자기가 구축한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내가 사는 세상이 제일 안전하다고, 내가 제일 잘났다고 믿고 살다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유형의 인간상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먹고 먹히는 세상,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가 쌓은 높은 벽 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도 끝없이 관심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벽 안쪽을 살피고 있다가 위험해 보이면 달려가 벽을 넘어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코뿔소, 호랑이, 침팬지, 그리고 거인이 그런 사람들이다. 편견을 가진 사람들 눈에는 예쁘게 보이지 않을 모습을 한... 그러나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좋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로 어울려 멋진 세상을 이루며 산다. 벽을 쌓고 사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세상......
오른쪽 그림을 다시 보자.
내지의 첫 그림에 덩치 큰 코뿔소가 책 가운데 있는 벽에 손을 대고 있다.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이다. 코뿔소 옆에 호랑이가 함께 있다. 그들은 벽 너머가 궁금하다. 그래서 벽 위로 올라가 보려 한다. 코뿔소 등에 호랑이가 올라타고 어느 새 다가운 침팬지가 다시 호랑이 등에 올라타 보지만 벽을 넘기엔 키가 모자란다. 그때 아주 작은 생쥐가 와서 코뿔소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생쥐가 들려 준 말은 벽 너머에 물이 차 오른다는 정보라는 걸을 추측할 수 있다.)
벽 오른쪽 세상은 코뿔소, 호랑이, 침팬지, 생쥐... 이들이 평화롭게 서로 어울리며 힘을 합쳐 살아가는 이상 세계임을 예리한 독자들은 이미 눈치챘으리라.
생쥐의 말을 들은 코뿔소가 놀라 펄쩍 뛰는 바람에 위에 올라 서 있던 동물들도 떨어져 버린다. 그들은 급히 달아난다. (알고 보면 위험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보다 훨씬 키가 큰 거인을 부르러 가는 거였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벽에 다다른 거인에게 생쥐가 사정을 알려 주고는 자신은 그 자리를 피한다.(거인은 생쥐의 말을 경청한다.) 거인은 벽에 기대어 벽 저쪽의 상황을 파악한다. 아이가 위험에 처한 것을 감지한 거인은 들고 온 방망이를 사다리로 삼아 높이 올라서서 벽 너머로 손을 뻗어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아이를 구해낸다.(거인이 들고 다니는 무서운 방망이는 누군가를 때려잡는 무기가 아니었다.)
자신을 구해준 거인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거인을 의심하며 벽 너머의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아이를 거인이 안심시킨다.
“하하하, 걱정 마라. 나는 착한 거인이거든. 그리고 책 이쪽은 아주 멋진 곳이야. "
아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거인을 믿고 따라가기로 한다. 벽 이쪽의 멋진 세상으로.
이 책 표지의 그림에 벽 아래쪽으로 내린 거인의 손은 아이를 해치려는 것이 아닌, 구원의 손, 온정의 손길이었다.
우리는 편견을 갖기 일쑤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멋대로 판단해서는 소통하지 않기 위해 벽을 쌓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남들이 내게 보내는 관심이나 온정조차 의심하려 든다. 자신이 어떤 위험에 놓인 줄도 모르면서...
작가는 말한다. 우리 모두 편견으로 가득한 마음의 벽을 허물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