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책 상징 읽기
글·그림 테리 펜, 에릭 펜, 데빈 펜 · 옮긴이 이순영/북극곰
테리 펜, 에릭 펜, 데빈 펜은 형제이다. 세 형제는 어릴 때부터 함께 캐릭터와 이야기 만드는 것을 꿈꾸었다. 테리 펜과 에릭 펜 형제는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은 <한밤의 정원사>와 <바다와 하늘이 만나다>를 함께 쓰고 그렸다. 또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크리스 해드필드가 글을 쓴 <깜깜한 어둠, 빛나는 꿈>과 베스 페리가 글을 쓴 <행복한 허수아비>에 그림을 그렸다. 모리스 센닥 장학금을 받았으며, 케이트 그리너웨이상 최종 후보, 캐나다총독상 후보에도 올랐다. 데빈 펜은 화가이자 시인, 그리고 청소년을 위한 활동가로 자연과 탐험과 쿵후를 사랑한다. <완벽한 바나바>는 데빈 펜의 첫 번째 그림책이며, 세 형제가 함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첫 번째 작품이다.
바나바는 실험실에서 만들어 낸, 생쥐와 코끼리를 반반씩 닮은 동물이다. 실험실은 ‘완벽한 반려동물’이라는 가게의 지하에 숨겨 있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완벽한 애완동물을 만드는데, 바나바는 실패작이어서 실험실 한쪽 작은 유리병 안에 갇혀 머지않아 재활용될 처지였다. 바깥 세상을 동경하던 바나바는 자신이 재활용될 때 정체성이 변할까 걱정하며 실험실에서 도망가기로 한다. 유리병에서 나오기 위해 애쓰던 그는 코로 숨을 크게 불어서 유리병을 깨고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꺼내 주어 함께 실험실 탈출에 나선다. 감시꾼들을 피해 파이프 속으로 들어간 그들은 실험실 바닥에 이르러 밸브 속에 갇힌 또 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 커다란 밸브를 힘겹게 돌린다. 그때 탱크 문이 열려 물이 쏟아져 지상에 있는 가게로 솟구쳐 올라가는 바람에 실패작이었던 생물들은 땅 위로 나간다. 바나바는 거기서 자신과 닮은, 완벽한 바나비를 마주한다. 바나바는 함께 탈출한 친구들과 함께 바깥세상에서 자유를 누리며 산다.
원서의 제목은 ‘THE BARNABUS PROJECT(바나버스 계획)'이다. 이것을 출판사에서 ‘완벽한 바나바’로 번역하여 붙였다. 굳이 제목을 이렇게 바꾸어서 붙여야 했을까?일반적으로 문학 작품의 제목은 상징성을 띠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바꿔 놓으면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완벽한’은 책의 내용과 맞지도 않고, 반어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어 책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거나 작가의 의도가 왜곡되게 한다.
표지는 유리관 안에 작은 동물이 들어 있는 그림이다. 동물은 얼핏 보면 쥐인데 코끼리의 코가 달려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표지를 넘기면 면지 가득 종이 파일들을 펼쳐 놓았는데 파일마다 이상한 동물의 그림과 들어 보지 못한 이름들이 붙어 있다. 이 책이 이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말해 준다.
속표지를 보면 면지의 종이파일들이 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위 사진은 원서의 속표지이다. 속표지의 그림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제목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고 책의 내용에 대한 안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림은 서류의 맨 앞 파일에 주인공의 그림이 있고 ‘바나버스 프로젝트’라는 파일명이 쓰여 있다. 이것이 ‘바나바(바나버스)’라는 이름의 새로운 동물을 만들기 위한 계획서임을 뜻한다. 그 뒤 종이에는 쥐와 코끼리의 결합을 보여주는 그림이 보이고, 세 번째 종이는 그것을 만들기 위한 설명서로 보인다. 맨 뒤에 있는 봉투는 이것이 비밀리에 진행된다는 암시이다.
번역서의 제목이 원서 그대로 ‘바나바 계획(프로젝트)’이라야 한다. ‘바나바’라는 이름의 괴물을 만드는 계획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바나바 계획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책을 펼칠 것이고 그 계획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가를 끝까지 읽으며 따라갈 것이다. 번역서에서 제목을 함부로 바꾸어 버리는 바람에 독자들은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길로 헤매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번역서를 낸 우리나라 출판사의 서평을 읽어 보면 애초에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번역하고 출판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완벽한 바나바’라는 맞지 않는 제목을 붙였다는 것도.
자, 지금부터 ‘바나바 계획’을 제대로 읽어 보자.(번역서에서 ‘바나바’로 해 놓았으니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주인공 바나바다. 반은 생쥐, 반은 코끼리를 닮았다. 비밀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동물이다. 실험실은 ‘완벽한 반려동물(perfect pets)’이라는 가게의 지하에 숨겨 있다.
이 장면이 많은 것을 시사하므로 꼼꼼히 뜯어보아야 한다. 상가가 늘어서 있는 거리의 모습인데, ‘완벽한 반려동물’이라는 가게가 유독 눈에 띈다. 가게 안에 이상한 동물들이 진열되어 있고 여기에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유리에 ‘유전공학으로 탄생!’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동물들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새로운 동물을 만들어 팔고 있다는 말이다. 잘 팔리지 않는 동물은 ‘50%세일’과 같이 할인판매도 한다. 인간들의 취향에 ‘완벽하게’ 맞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애완동물로 팔고사는 무서운 세상이 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 많은 동물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림의 양 구석쪽에 있는 개와 고양이, 그리고 지붕 위의 고양이, 비둘기는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동물들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목줄을 매어 데리고 있는 동물들은 모두 이상하다. 이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동물들은 이 가게에서 구입한 것임이 틀림없다. 유전자 조작 애완동물이 이미 보편화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그림이다.
실험실이 지하에 깊이 숨겨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실험실에서 하는 일이 떳떳하지 않은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다. 유전공학이니 뭐니 하며 새로운 생물 종을 만들어 내는 일이 비윤리적인 일이므로 남 몰래 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이 장면은 지하 실험실 전체의 모습으로, 이 책을 순서대로 넘겨 보다가도 계속 되돌아와 다시 확인하게 하는 장면이다. 지상의 세계보다 훨씬 더 깊고 넓고 복잡하다.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와 수많은 파이프가 얽혀 있다. 조명이 환하게 켜진 방들이 실험실로 보인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도 있고 작업복으로 보이는 연두색 옷을 입은 사람들도 있다. 이 속에서 동물들의 유전자를 섞어서 지구상에 없던 괴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주인공 바나바는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아 다른 ‘실패작’들과 함께 실험실의 작은 유리통 안에 갇혀 있다. 바나바는 바퀴벌레에게서 아름다운 바깥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갖는다.
바퀴벌레가 들려 준 바깥세상의 모습이다. 드높은 빌딩들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는데 유독 ‘호텔’이라는 글자와 화살표만 돋보이도록 그려 놓은 것은 풍자를 위한 장치로 보인다.
바나바는 자기와 같은 실패작들이 재활용된다는 이야기를 들고 고민에 빠진다. 사람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일지라도 나는 내 모습을 좋아하는데, 재활용될 때 자신의 내면까지도 달라질까(남에 의해서 외면과 내면이 모두 달라진다는 건 결국 자신이 죽어 없어진다는 의미이리라.) 봐 걱정하다가 실험실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바나바는 유리병을 깨려고 애쓰다가 자신의 긴 코를 이용해 바람을 세게 불어 유리병을 깨는 데 성공한다. (사람들이 동물을 만들기만 했지 이런 힘이 있으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실패작인 친구들을 모두 깨내 주어 함께 탈출의 길에 나선다.
감시꾼들을 피해 좁은 파이프 속으로 들어간 그들은 마침내 실험실 바닥에 다다른다. 거기서 아주 큰 통에 갇혀 있는 동물의 슬픈 눈을 본 바나바는 그도 자기들처럼 실패작임을 알아채고는 그를 꺼내 주기로 마음먹는다.
친구들과 힘을 합쳐 가까스로 큰 통의 밸브를 돌린다. 감시꾼들에게 잡히기 직전 탱크의 문이 열리고 물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려 그들을 휩쓸어서는 반려동물 가게 안에다 쏟아 놓는다.
바나바는 가게 안에서 자신과 닮은 ‘완벽한’ 바나비를 본다. 자신보다 눈이 크고, 솜사탕처럼 보드러운 털을 가진 바나비...... 바나바는 바나비만큼 완벽하지 않지만 자유를 누리며 친구들과 함께 하는 삶을 기뻐한다. 그토록 원하던 바깥세상에서의 삶에 어려움이 있지만 친구들과 함께여서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다.
바깥 세상에 나온 생물체(사실 이들은 괴물이다)들이 찾은 곳, 밝고 경치가 아름답고 행복이 있는 곳을 찾아 거기서 살기로 한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맨 처음에 설정해 놓은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고 책을 잘못 읽기 쉽다. 자유를 향한 도전정신, 친구들과의 협동정신, 또는 자존감을 갖고 살자는 이야기로 이해하기 쉽다는 말이다. 물론 이와 같은 주제도 들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이쯤에서 번역 출판사의 서평을 소개한다.
“<완벽한 바나바>는 가장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 모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일깨워 줍니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가능성인지를 알려줍니다. 살아 있는 매 순간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랑과 우정의 힘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가장 불완전한 존재들의 탈출을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합니다.”
작가의 의도에서 완전히 빗나갔다. 이 서평을 읽고 책을 구입한 독자들이 과연 이 서평을 무시하고 작품을 읽을 수 있을까?
이 장면을 들여다보자. 세상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괴물들로 가득하다. 어떤 괴물들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함께 살기도 하고 또 어떤 괴물들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살기도 한다. 그들 중 어떤 것들은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기도 한다.
세상은 자연의 생물과, 인공으로 만들어진 괴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괴물들은 사람들과 함께 지구에 살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고 위협이 되기도 한다. 이들로 인해 앞으로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아래 그림이 그 한 단면이다.
괴물을 만들어 낸 사람들 - 돈을 벌어 들이기 위해 이런 엄청난 짓을 획책한 기업가, 거기에 동조한 비윤리적인 과학자들, 어디 그들뿐이겠는가?그것이 어떻게 해서 생긴 건지 아무 상관도 않고 애완동물을 찾는 현대인들 모두가 그 사람들이다. - 누구도 자기들이 저지른 짓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이 벌인 짓의 결과를 누구도 수습하지 못하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작가인 팬 형제는 ‘바나바 계획’을 통해 현대과학의 비윤리성과 무책임함, 생명 경시 풍조를 고발하고 비판한다. 또 생태계와 우주 질서 파괴, 그에 따른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대한 경고, 이것이 ‘바나바 계획’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