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밑집에 찾아온 봄손님

봄 그리고…

by 라 러쉐

내가 사는 지금 이곳은 울창한 숲과 강과 별장들만이 즐비한 퀘벡의 어느 시골마을이다.

원래부터 캠핑장소였던 이곳을 한 이십여 년 전쯤에 시에서 폐지하고부터 정년퇴직하신 분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별장도 졌고 텃밭도 가꾸고 하면서 집 겸 별장 겸 그들만의 보금자리로 변하였다.


퀘벡의 겨울이 워낙 춥다 보니 이곳에 봄이 오면 그 두껍게 얼어있던 강들이 하나둘씩 쩍쩍 소리를 내면서 깨지듯이 서로가 떨어져 나간다.


겨우내 얼었던 그 두꺼운 얼음조각들이 유유자적 신기하게도 다 떠내려가는 걸 보면서 그 위에 북극곰 한 마리만 앉혀놓으면 딱 안성맞춤이겠다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얼마나 긴 시간을 기다렸던가!

육 개월간의 긴 겨울을 보내고 찾아온 봄!

정말 지루하고 춥기만 한 겨울을 보내고 있노라면 봄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가끔은 하게 된다.


이렇게 추운 날이 슬슬 풀리면 그동안 숨어 지냈던 산짐승들도 하나둘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사슴들을 볼 때면, 왠지 모르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대하듯 참 반갑다!

맑고 동그란 눈! 그런데 괜스레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 저 커다란 눈망울!

그 눈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꼭 속고 있는 느낌마져든다.


너구리나 코요테들처럼 음식을 훔쳐먹기 위해 집 주변을 싸하게 돌아다니는 거에 반해 사슴들은 나무의 새순들을 뜯어먹거나 얼어있던 야생과일들로 허기를 채우면서 사뿐사뿐 집 주변을 돌아다닌다.

워낙에 생김 자체가 고고하게 생겼으면서도 어찌 보면 새침데기 같아 보이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갸냘퍼보이기때문에 어느새 나는 사슴들의 행동하나하나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넋을 놓고 바라본다.


그리곤 문득 옛날 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시인 노천명의 “사슴” 이란 시가 떠오른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에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바라본다.


내 집 앞마당에 있는 사과나무엔 아직도 얼음사과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어서 사슴들 먹이로 아주 좋다.

사슴들 먹이터로 쓰이라고 옛 주인이 마련한 뒷마당 간이식탁에 얼음사과들을 얹어놓으면 아빠사슴 엄마사슴 애기사슴들이 언제 죄다 와서 먹고 갔는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럼 난 또다시 사과나무가 있는 쪽으로 향한다!

“고걸그새 다 먹어버렸어 참!!” 하면서 말이다.


어느 날 뒷문을 열고 나가다가 간이식탁 근처에 있는 사슴들을 보았다. 미리 갖다 놓은 얼음사과들을 먹을 생각인가 보다.

엄마사슴이 먼저 가서 주변을 둘러보고 냄새도 맡고 하면서 안전여부를 따진다.

모든 것이 안전하다 싶으니 나머지 가족들이 슬래슬래 모여든다.

먹는 모양도 참 귀여우면서도 재밌다.


이렇게 내가 사는 언덕밑에 작은집의 봄은 사슴들의 출현으로 서서히 시작된다.


그럼 내 맘속도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집 밖에 할 일이 태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마음뿐이다!

지금같이 어정쩡한 계절엔 할 수 있는 일들이 딱히 없다. 아직도 눈들이 다 녹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그냥 허즐럿향기나는 커피 한잔 들고 대충 두툼한 목도리하나 두르고 집 앞 갤러리난간에 걸터앉아 햇살아래 노니는 사슴들을 보는 것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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