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사악해. 우리가 슬퍼해야 할 이유가 없어.

영화 <멜랑콜리아>에 대해

by 조윤지


영화 멜랑콜리아는 멜랑콜리아라는 거대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과정을 그린다. 1부는 저스틴의 시점, 2부는 클레어의 시점으로 감정과 행동을 자세히 다룬다. 영화는 저스틴의 결혼식 장면에서 시작하며, 진행될수록 그녀의 감정은 점점 더 격해진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제어할 수 없으며, 결혼식 참여를 거부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거나,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는 등 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 결국 결혼식은 파국으로 치닫고, 남편 마이클도 그녀의 곁을 떠난다.


2부는 결혼식 이후의 클레어 이야기로 이어진다. 클레어는 멜랑콜리아 행성이 지구를 덮칠 것이라는 불안에 시달린다. 그러나 남편 존은 그럴 리 없다며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행성이 점점 커지고, 클레어의 불안도 점점 커진다. 존은 아들 레오가 만든 철사 장치로 행성의 크기를 직접 확인해 보라고 권한다. 측정 결과, 행성은 잠시 멀어지는 듯 보이지만, 이내 다시 지구로 빠르게 접근한다. 망원경을 거의 끼고 살던 존은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직면하고 자살을 선택한다. 클레어는 충돌을 피하려 하지만, 도피처는 어디에도 없다. 결국 클레어, 저스틴, 그리고 레오는 마법동굴로 들어가 손을 잡은 채 멸망을 기다린다.


202501171327113.jfif 저스틴의 결혼식에서


‘멜랑콜리아(melancholia)’는 고대 그리스어 μελαγχολία (melankholía)에서 유래했다. 자세히 보면 μέλας (mélas)는 ‘검은’이라는 뜻이고, χολή (kholḗ)는 ‘쓸개, 담즙’이라는 뜻이다. 즉 ‘검은 담즙 상태’라는 의미다. 고대 의학에서는 인간의 체액 균형이 성격과 건강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그중 검은 담즙이 많으면 우울해진다고 여겼다. 치료법으로는 식이요법과 담즙을 줄이는 약 처방, 운동, 음악, 산책 등 생활습관을 통한 균형 회복이 있었다. 당시에는 육체적 질병으로 여겨졌던 것이심리적 증상뿐 아니라 행동적 증상으로는 집중력 저하, 사회적 회피, 무기력 등이, 신체적 증상으로는 소화불량, 식욕 감소, 창백함이 나타난다고 서술된다.


오늘날 멜랑콜리아, 즉 우울증은 심리적 질환으로 해석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울증의 사회적 인식은 좋지 않았으며, 우울증 환자는 격리되어야 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또한 정신과 상담조차 암암리에 받아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코로나 블루’라는 용어가 생기며,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의 범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상담을 받는 것도 흔해졌으며, 우울증에 대한 시선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완전한 선입견을 없애기에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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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삶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감정이다. 오히려 우울을 겪어보지 않았다는 말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않거나, 감정을 잘 모르는 미성숙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죽은 인물이 과학을 신뢰하며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존이라는 점은, 우울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 단순히 개인의 기질 문제만이 아니라, 환경과 상황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우울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이를 경험한다고 해서 이상하거나 자아가 약한 것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는 단순히 허구적 서사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감정, 그리고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우울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우리의 삶은 각자의 행성계와도 같다. 행성은 우리의 감정이고, 중심인 ‘나’가 바로 우리의 삶의 중심이라고 가정해보자. 여러 행성은 ‘나’라는 항성을 중심으로 공전하는데, 이때 중력은 중요하다. 중력은 행성들이 나로부터 벗어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하며, 주위를 공전할 수 있게 하고, 다양한 대기 성분이 흩어지지 않도록 묶어둔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의 순서처럼,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도 나름의 궤도를 돈다. 그러나 중심인 ‘나’라는 별이 불안해지면, 그 균형을 잡아주던 중력도 흔들린다. 그러면 멜랑콜리아 같은 거대 행성이 중심을 향해 돌진한다. 위험하고 다급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잘 지키는 능력이 있다면 충돌은 피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항성이라면 암흑 우주 속 멸망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멜랑콜리아4.jpg 거대 행성 멜랑콜리아를 바라보는 저스틴, 클레어, 존


프로이트는 죽음 충동을 이야기한다. 프로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존재자는 모두 무기체에서 유기체로 진화했기 때문에, 다시 무기체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 행성이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울이라는 행성은 때때로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다가도, 궤도가 불규칙해지면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저스틴은 자신을 행복한 모습으로 꾸며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 모습은 자신을 더 억압하고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저스틴이 영화 속에서 보여준 욕조 장면의 무기력한 모습과 침착한 모습은, 만성 우울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만성 우울증은 심한 무력감과 나른함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불안 예기(Angsterwartung)는 신경증의 핵심적인 증상이다. 프로이트는 이에 대해, 우리는 일정 양의 불안이 자유로이 떠돌다가 기대가 있는 곳에서 적절한 관념 작용의 내용과 언제든 결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즉, 마음속의 불안이 특정 상황에서 행동이나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클레어가 거대행성의 존재를 두려워할수록, 존의 말을 적절한 관념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말이다. 영화 속 세상은 멸망했지만, 아직도 우리의 삶에는 거대 행성인 멜랑콜리아가 떠 있다. 이 행성은 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떠 있다가도, 가끔은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거대해질 것이다. 하지만 명심하자. 이 행성계의 중심은 바로 자신이다. 너무 밀지도 당기지도 않으며, 감정과 잘 공존하되, 적당히 우울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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