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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청춘들과 굳건한 이창동.

"버닝" 리뷰

by 김영준

※주관적인 생각이 담긴 글입니다(스포포함)※

문창과를 졸업한 뒤 배달일을 하며 생계를 버는 주인공 종수(유아인)는 어느 날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주장하는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해미의 일방적인 대시로 그날 잠자리를 보낸 종수는 해미를 여자친구로 여기지만 해미는 그저 친한 친구로만 여긴다. 해미는 종수에게 아프리카 케냐에 여행을 가고 돌아오자 그녀 옆에는 아프리카에서 사귄 친구 벤(스티븐 연)을 소개한다. 벤과 만남 후 종수와 헤미는 미스터리 속으로 들어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종수

"버닝"속 종수

"버닝"은 스릴러 분위기를 품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데 극 중에서 주인공인 종수의 관해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 종수는 20대 청년으로 작가의 꿈을 품고 문창과로 대학을 졸업하지만 배달과 아버지의 비닐하우스를 관리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시간이 있을 때 소설을 쓰려 하지만 주저하다 한두 줄 쓰고 지워버리기 일쑤이다. 이런 면에서 종수는 자기혐오와 지신감부족등 가장 유약한 20대 청춘이다. 청춘의 시가을 낭비하던 종수는 벤과 만나게 되는 순간, 종수는 그의 포르셰를 보게 된다. 종수의 차는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시골의 낡은 트럭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트럭과 벤의 포르셰를 바라본 종수는 자신과 나이차가 크지 않음에도 한눈에 보이는 재력에 차이에 종수는 무력감과 자존감 하락을 극심하게 느낀다. 이런 종수는 작가 등단을 목표로 글을 쓰려하고 주변사람에게도 어쩌다 자신의 꿈을 밝혀서 어떤 글을 쓰냐는 질문에도 회피하고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가가 꿈이기에 문학적으로 해박한 측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성공에 대한 갈망이 없고 순간만을 살려고 하며 성욕과 욕구를 풀기만을 원하는 청춘에 모습을 하고 있다. 즉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고 흔들리는 현대의 청춘을 보여준다.

종수에게는 분노 조절장애로 감옥까지 간 아버지와 어린 시절 도망간 어머니가 있는데 이들은 각각 벤과 해미와 닮아있다. 밑에서 더욱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해미

"버닝"속 해미

해미는 행동과 신념이 이상하고 기이한 캐릭터이다. 해미와 술자리를 가진 종수는 해미의 팬터마임에 관심을 보인다. 해미는 귤이 있다 믿으며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닌 귤이 없다는 것을 잊어야 팬터마임을 할 수 있다고 덭붙인다. 그 기이함은 해미의 집안에서도 이어진다. 해미는 "보일이"라는 고양이를 데려와 키운다고 주장한다. 종수는 처음에 믿지 않았지만 매일 없어지는 고양이 사료, 변이 남아있는 고양이 화장실등 실체는 목격하지 않았지만 남아있는 흔적으로 그녀의 주장을 믿게 된다.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되면 보일이의 존재유무가 미스터리 해지게 된다. 마지막 주차장에 있던 고양이가 보일이 인지는 모른다. 이런 미스터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게 된다. 영화에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노을 지는 종수집 앞마당에서 그레이트 헝거를 상의 탈의하고 추는 장면일 것인데 자유로워 보이고 구속에서 벗어난 듯한 전종서의 미친 연기는 해미의 성격을 제대로 보여준다. 종수는 자고 일어난 해미에게 "남자 앞에서 옷을 왜 함부로 벗어, 그건 창녀들이나 하는 짓이야."라고 말한다. 해미는 창녀와 비슷한 일을 했다. 케냐에 갈 때 자신의 집과 고양이를 봐줄 남자를 찾기 위해 종수에게 금전적인 보상이 아닌 육체적인 보상으로 종수를 고용한다. 종수와 성관계를 가질 때에도 능숙하게 콘돔을 꺼내고 능숙하게 침대로 가는 모습도 여러 번의 경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미는 본인이 창녀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창녀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해미의 성격은 좋게 말하면 털털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헤픈 여자로 설명할 수 있다. 종수는 사라진 해미를 찾기 위해 그녀의 가족을 찾아 물어보지만 그녀의 가족은 "해미, 걔 원래 말 잘 지어내."라는 말을 듣는다. 종수와 관객은 그 이전에 시간들이 혼란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고양이 보일이, 케냐 여행, 벤과의 첫 만남, 종수와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카메라에 담기지 않은 확실하지 않은 정황상 단서들이 모두 거짓일 수 있다는 의심과 배신 속에서 해미만 기억하고 있는 줄 알았던 어릴 적 우물의 위치는 그 와중에 종수의 엄마만이 기억하고 있었다.


"버닝"속 벤

다음은 벤이다. 벤은 이영화 속 미스터리의 중심이자 이야기 위에 있는 캐릭터이다. 이른 나이에 포르셰 911을 타고 다니며 의도한 바가 아니든 종수의 자존감을 잘근잘근 짋밣아 버리는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 벤이 부자가 된 기원과 직업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점은 벤의 미스터리를 한층 더 견고하게 쌓아 올려주는 핵심이다. 그의 재력과 영향력은 벤의 대사인 "나는 있었던 것도 없었던 걸로 만들 수 있어요"라는 말로 가늠할 뿐이다. 그리고 벤의 대사는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 벤 집 화장실을 서랍을 보면 붓이 담긴 통과 여성들의 팔찌들이 놓여있는데 후에 해미가 찬 시계가 그곳에 있자 벤이 해미를 살해한 것이 확실해진다. 해미와 벤이 만나고 있을 때 벤은 해미를 자신의 친구들에게 소개를 해준다. 물론 그들도 벤과 같이 젊은 나이에 부자인 사람들로 해미가 그들에게 케냐 여행이야기를 보여주다가 그곳에서 배운 그레이트 헝거를 보여주게 되는 데 그 모습은 마치 당사자만 모르는 시험장과 같이 해미를 보는 시선이 점수를 매기는 심사위원의 눈빛과 디졸브 된다. 벤은 자신의 여자친구를 친구들 앞에서 심사를 받는 것과 같다. 벤도 인정한 사실인 그는 사이코패스인 것이다. 해미가 실종된 것은 친구들에게 탈락받았기 때문인 것이다. 벤이 여자친구로 택하게 되면 상대를 붓으로 화장을 해주는 의식과도 같은 절차를 치르고 나서 여자친구가 되는 것이다. 이런 벤의 사이코패스적인 면은 분노를 표현하는 데 있다. 벤은 자신이 분노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두 달에 한 번씩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가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경찰과 법도 시골에 비닐하우스 하나 타는 것에 하나도 관심 없다는 것을 멋있다는 듯이 말하며 영약 한 면도 보인다. 영화 끝까지 벤이 태운 비닐하우스를 찾을 수 없었지만 벤이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종수의 아버지와 디졸브 된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종수의 아버지는 분노를 전략적으로 배출하지 못해 교도소까지 갔지만 벤은 전략적이고 영악스러우며 치밀하게 배출하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그럼에도 벤과 종수의 아버지는 같은 인물로 보아도 될 정도이다.


결론

"버닝" 스틸 컷

종수 아버지= 벤, 종수의 어머니=해미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종수는 아버지의 폭력적인 행동, 엄마의 옷이 타는 것을 보면서 생긴 원망, 비닐하우스가 타고 벤의 포르셰가 탄다. "burning"의 현장 속에서 종수는 늘 존재했다. 종수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혼란스러운 청춘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해미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 있다. 종수가 해미의 집에서 글을 쓰듯이 종수는 팬터마임을 하며 해미를 만들고 벤을 살인한 것일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버닝 속 미스테르는 절대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혼란과 비이상적 결정과 결론 난무하는 현실에서 "버닝"속 미스터리는 현실에 존재하는 미스터리와 같다는 결과를 낼 수 있다. 무엇이 되었든 2017년 당시 청춘들은 흔들리고 있다. 현재도 청춘들은 바람에 이끌려 흔들리는 갈대들처럼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창동의 예술과 영화는 굳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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