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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러 정태 Jan 12. 2022

20대를 졸업했습니다

Diary

29.9살


평소 별다른 감정이 없던 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 살 더 먹는다고 해서 별다를 게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때까지 나이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무심하게 살아왔지만 올해만큼은 남들처럼 요란하게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항상 옳은 선택을 하고 지금을 좀 더 윤택하게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꿈이 없었던 나의 학창 시절. 자연스럽게 공부도 등한시하였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컴퓨터가 적성에 맞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컴퓨터공학과에 진학 하긴 했지만 막상 처음 만져보는 난해한 코드들을 보며 나는 개발자에 어울리지 않는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 길도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미래를 말이다. 매일매일 놀기에 바빴다. 매일 너무나도 똑같이 놀아서 기억에 남는 별로 추억은 많이 없지만 이때의 나는 걱정이 없었고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랬던 내가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던 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우리 학교 안에 '비트교육센터'라는 교육기관에서 수업을 대신해서 들을 수 있는 과정이 생겼다. 수강료가 수백만 원이나 하는 비싼 과정이었지만 수업을 듣기 싫었던 나는 엄마를 졸라서 이 과정을 수강했다. 그리고 태어나서 제대로 된 코딩을 배워봤다.



어려웠다. 무늬만 컴퓨터공학과 학생이었던 나는 수업을 따라가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달랐다. 예전에는 진도가 나가든지 말든지 수업시간에 멍하니 잡생각에 빠져있었다면 이번만큼은 그래서는 안되었다. 벌써 대학교 3학년 이미 나는 낭떠러지 끝자락에 와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포기하면 내 인생은 정말 죽도 밥도 안될 것이 분명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그리고 새벽까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했다. 그렇게 7개월의 대장정 끝에 수료증을 받았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한량하게 살아가던 나의 인생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게 된 사건이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4학년이었다. 쉴 시간이 없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그리고 새벽까지 정말 취업에 필요한 활동은 다 했다. 취업을 위해 청년취업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에서 6개월짜리 자바 고급과정도 추가로 들었다. 별다른 공백 없이 시간을 온전히 갈아 넣다 보니 어느새 나는 반에서 가장 코딩을 잘하는 학생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운이 좋아 별다른 취준 기간 없이 취직에도 성공했다. 내 나이 26살이었다. 이렇게 나의 대학생활은 여유로움 반 치열함 반이었다.


취업을 하고 나서 지금까지는 내 인생에 구멍이 난 것 처럼 기억에 남는 추억이 별로 없다. 정확히는 기록하고 싶은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저 매일 집 회사를 반복하다 보니 나이만 먹어버렸다.



인생이 별로 재미가 없네

생각해보니 내가 여행을 한 번도 안 가봤었구나



내가 비행기를 언제 타봤었더라?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나 대체 이때까지 뭐하고 산거야


억울한 마음에 서른 살을 이틀 남기고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서 처음 일출도 보고 각종 여행지를 다니면서 내가 살았던 과정을 되돌아보았다.


그래 이만하면 잘 풀렸지.


남 부럽지 않게 놀아보기도 했고. 미래를 위해 열심히 달려보기도 했다. 내 20대는 그 나이대만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과 열정을 모두 다 느껴본 성공한 시간이었다. 나름 잘 풀린 인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꽤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고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그런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내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을 수 있고, 사고 싶은게 있으면 살 수 있고, 내 방에 보일러도 잘 돌아가고 있으니까. 이 정도면 괜찮은 인생아닐까?


이제 30대를 시작하게 된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갈 각오가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저 바라만 봐도 배울 것이 많고 절로 존경심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30대의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하고 싶다. 어차피 사람은 태어나서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명예나 돈보다는 즐거운 인생을 추구하고 싶다. 후회없는 20대를 보냈듯 매순간 최선을 다해서 후회없는 30대를 보내고 싶다. 온전히 내 행복을 위해 살고 싶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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