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면서 무슨 생각하세요?

낯선 풍경과 분위기가 인도하는 과거로의 시간(추억) 여행

by 오히려 더 좋다
스쳐 지나가는 낯선 풍경과 물건들...

과거의 우물 속 깊이 잠들어 있던... 까. 마. 득. 하고... 아. 련. 한. 추억을 현재로 길어 올리는 두레박 역할을 하고는 한다.


자가운전으로 여행을 떠날 때, 고속도로와 국도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 국도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고속도로의 편리함보다는 의도하지 않았던 낯선 풍경과 분위기를 기대하는 속내가 다분한 이유이다.


국도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과 분위기가 인도하는 과거로의 시간(추억) 여행....


시골길을 운전하다 보면 30km/h 스쿨존을 자주(짜증 날 정도로...) 만나고는 한다.

한적하고 아무도 없는 시골 건널목에서 매번 속도를 줄여야만 한다.

달리던 속도로 그냥 지나치고 싶은 무모한 반발심이 강하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물론, 발칙한 반발심이 속도를 줄여야 하는 의무감을 결코 이길 수는 없다. 신호등 머리 위에서 위반만 해보라 하고 째려보는 속도 감지계와 발생할 과태료를 생각하면 저항심은 무기력하게도 순식간에 무장해제당한다.


속도를 낮추라는 스쿨존 덕분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으니 한편 좋은 점이 있기도 한 것 같다.


건널목 신호등 옆으로 아주 예스러운(책 읽는 소녀상, 이순신 장군 상등이 있는....) 분위기의 학교 건물과 작은 운동장이 보인다.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짠하다.


낯선 시골 학교 풍경이 심연 속에 잠들어 있던 빛바랜 추억 하나를 길어 올리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음악시간으로 거슬러 간다.


책, 걸상만 다닥다닥 붙어있는 딱딱한 교실 분위기와 음악 감상이라는 단어는 애당초 어색함 그 자체였다.

학교 음악 시간에 조금 더 나은 음악 감상을 하려면 별도 공간이 필요해 보였다. 어떤 특별함이 요구되는 것이 아닌 공간적으로나 분위기로 조금이나마 더 여유가 있는 그런 공간을 의미했다.


음악 시설이 비교적 잘 갖추어진 음악실, 그에 더해서 낭만과 철학적(?) 여유가 넘치는 음악 선생님이 계셨다. 두 조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을 다 가질 수 있었으니 아주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된다.


약간은 통통하시고 아담한 풍채에 곱슬머리... 검은색 뿔테... 도수가 다소 높아 보이는 근시 안경을 (생각해 보니... 안(?) 생긴 슈베르트와 비슷한 느낌....) 쓰고 계셨다. 아이들에게 음악이라는 것을 가능한 자주 접하게 해 주시려는 관심과 배려가 명확해 보였다. 거짓과 과장이 아닌 진심인 것은 틀림이 없어 보였다.


교육자로서 당신의 사명처럼 여기고 계신 듯 보였다. 가장 민감한 어린 개구쟁이들 표정과 눈빛이 그에 대한 진실과 고마움을 재차 확인해 주고 있는 듯도 했다. (아이들도 다 알고 있다... 어른들의 거짓과 위선....)


대부분의 아이는 음악과 동떨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음악은 사치였다.(지극히 개인적인 판단 입니다만...) 더군다나 대중가요도 아니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달나라, 화성을 넘어 저 멀리 명왕성... 해왕성... 우. 주. 끝. 세상에서나 있을 법한... 일상생활과는 멀어도 아주 먼 딴 나라 일인 듯했다.




교실에서 따분한 음악 이론 (간단한... 아주 간단한...)을 배우는 것보다 음악을 듣는 시간이 더(아주 더) 좋았다. 음악 감상보다는 그것을 빙자한 잠깐의 낮잠을 즐길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는 것이 또 다른 솔직한 표현일 수도 있는 듯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감상이라는 표현은 당시의 개구쟁이들에게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밀려오는 졸음에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었다.


졸면 안 된다는 긴장감과 졸고 있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미안함과 당혹감이 바람에 휘날리는 연처럼 왔다 갔다 했다. 의식의 연이 아주 멀리 달아나지 않도록 긴장의 얼레를 팽팽한 상태로 유지하려 애썼다. 노력과 달리 번번이 달아나려는 연이 이기고 툭하고 끈이 끊어지는 순간들이 끝내는 닥쳐오고야 만다.


끈 떨어진 연이 달아나며 내는 소리(코 고는...)로 코믹한 장르의 실내악이 시작되고는 했다.


음악실에는 비교적 괜찮은(?) 오디오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다. 당시의 음원이라면 LP판이 대세였고 선생님은 정성스레 LP판 위의 먼지를 닦고 조심스럽게 음반 위에 바늘을 올려놓으시고는 했다. 그 모습은 마치 한 잔의 차를 마시기 위해 정성스레 다구(茶具)를 준비하는 선인(仙人)을 연상하게 만들고는 했다.


강단 앞쪽 한편에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뚜껑이 열려 연주상태로 대기하고 있는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 마치 살아있는 인격체로서 사관생도가 연상됐다. 정복을 입고 부동자세로 품위 있게 서 있는 듯 기품 있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금빛 사운드보드 (soundboard)와 구릿빛 현(string)으로 반짝이는 하프모양... 하프를 연주하던 그리스 여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듯했다.


광택이 흐르는 검은색의 피아노는 개구쟁이들 장난질을 사전에 차단하기에 충분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개구쟁이들이 만지기 시작하면 이유 없이 고장 나고... 남아나지 않는다는 법칙....) 잔뜩 주눅 들어 있던 개구쟁이들... 그래도, 호기심에 용기를 내어 슬쩍 흰건반 검은건반을 살며시 딩동 거려 보고는 했다.


선생님은 사관생도와 여신을 맘껏 호령('희롱'이라고 쓰고 싶은데...)하며 쇼팽의 야상곡(Nocturne No. 20 in C# minor)을 직접 연주해 들려주시고는 했다. 추억의 우물 속 깊은 곳 한쪽에 가장 아련하고 소중하게 남아있는 곡이다. (다른 여러 곡이 있었지만...)


음반으로 듣다가 직접 연주해 주시 기라도 하면...(자랑이 틀림없어 보였어요... 웃자고 하는 말 아시죠?) 아이들의 탄성은 경외심과 질투(?)를 넘어 음악실과 학교 담장을 넘어 밖으로 터져 나갔다.


음악시간이 진행됨에 따라, 아이들에게 음악을 대하는 행동 제한 프로그램이 저절로 탑재되기 시작했다. 음악에 대한 태도와 개념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까불거나 가벼운 행동이 빈도수에 있어서 급격히 줄어들었다. 동시에 더욱 진지해지고 있었다. 선생님의 노림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 효과는 확실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차음의 소란스러웠던 그런 분위기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음악을 들으려는 자세가 까불이들 사이에 점차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태도가 짐짓 어른스럽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적어도 음악실에서만큼은... 음악을... 통해서 시작됨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실 창가에는 검은색과 자주색 두 겹으로 만들어진 빛과 소음 차단용 두꺼운 암막 커튼이 복도 쪽과 창가 쪽 양쪽으로 쳐져 있었다. 음악실에서 날 수밖에 없는 소리로 다른 교실수업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목적이 가장 큰 듯해 보였다.


강한 햇살이 창가에 내리쬐는 어느 날 오후 수업, 커튼 사이 열린 작은 틈으로 가느다란 한줄기 강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고는 했다. 햇살이 억지로 커튼을 칼로 자르고 들어 온 듯 예리해 보였다. 실내의 어둠(그늘)과 대조되면서 더욱 눈부시게 밝았다. 어둠과 밝음의 경계가 너무도 강하고 날카로워 보였다. 경계의 칼날에 베일 수도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경계가 책상 위 손목을 가로지를 때는 비명을 지를 뻔하기도 했다. (뻥이 너무 심하지요?...)


밝은 햇살은 어둠에(그늘에)서 존재감이 없던 작은 먼지들을 밝은 세상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밝은 햇살이 커튼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 그 존재감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어둠 속 비밀스러운 존재들이 빛의 칼날 위에서 현란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뽐내고는 했다. 먼지들의 움직임은 마치 '먼지가 왈츠를 추거나 발레를 하는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는 했다. (아무 근거 없이 그냥 혼자만의 느낌...)


회의실 프로젝터 렌즈 앞, 강한 램프 빛 속에 부유하는 작은 먼지들이 만들어내는 춤의 향연이 보인다.

순간, 그 시절 음악실로 나만의 웜홀을 통과하면서 시간여행을 한다.


"다들 눈 감아라."

"졸리는 사람은 자도 좋고.. 자면서 들어도 좋다."

"가장 편한 자세로... 엎드려도 좋다."


암막 커튼이 닫힌다.

몇 개 조명을 끄고 비교적 안락한 감상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겨울 나그네... 보리수... 송어... 야상곡.. 기타 등등....

다양한 음악이 선곡되어 때마다 다른 음악을 듣는다.

직접 피아노 연주를 해주시면서 빼어난 실력(?)을 손수 보여주시는 선생님이 보인다.


들려주시는 곡(Nocturene No.20 in C# minor)이 무슨 곡인지도 몰랐다. 그냥 피아노 선율이 좋았다.

부드럽고... 조용하고... 신비한... 선율은 음악에 익숙하지 않았던 개구쟁이들을 무의식의 세계(졸음)로 인도하는 달콤한 마법의 수면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해보였가. 음악이 시작되고 개구쟁이 졸음의 세계로 빠져드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이 분침을 서너 번만 앞서면 충분한 듯했다.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망설(서성)이고 있을 때, 귓가를 감싸고도는 그 선율에서 뭔지 모를 처연함과 슬픔도 함께 느껴지고는 했다.


끊일 듯이 이어지는 아주 낮고 작은 선율에서는 숨 막히는 긴장감에 휩싸이고는 했다. 한 박자 쉬어가려는 시계의 초침 소리마저 더욱 크게 들리는 듯했다.


긴장의 단계를 넘어서면서... 개구쟁이들은 서서히 마법의 수면제에 취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꿈나라 열차에 하나둘씩 탑승하기 시작한다.


"음악을 들으니 어때 좋았나?"

시간이 끝날 때쯤 항상 질문하신다.


"졸려요."

개구쟁이들 소리쳐 대답한다.


실내가 떠나갈 듯한 웃음소리와 함께...

자고 싶은 마음과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 두 마음이 아쉬운 듯 뒤엉켜 있다.

유쾌한 웃음과 눈빛에 어색한 만족감과 고마움의 미소가 듬뿍 배어 있다.


시골길 풍경과 차 안에 흐르는 곡, 빛바랜 추억이 흑백 사진처럼 떠오른다.

개구쟁이 까까머리 친구들과 음악 선생님 그리고 음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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