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커피 덕분에 살아남았다.
아침을 어떻게 시작하시는지요?
아침을 시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비비며 마지못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이의 재잘거림 혹은 반려 강아지나 고양이의 부스럭거림으로 잠에서 깨어나 사랑스러운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자란 잠을 보충하는 어느 주말 아침, 강렬한 아침햇살이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는 시간이 되어서야 막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기도 할 것이다.
어떤 날은 조용하고 신선한 새벽 공기와 새소리가 어우러진 쾌적한 아침에 저절로 일어나기도 할 것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천천히 침구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불을 한 번씩 접으면서 그 위에 베개를 올려놓으면서 집사람과 함께 매일 아침 기도를 한다.
일상생활에 철학을 담은 암구호에 가까운 짧은 기도문이다.
매일 아침 되새기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 아침 기도 -
1. 감사합니다.
2. 기뻐합니다.
3. 기도합니다.
4.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5. 구하라.
6. 찾아라.
7. 두드려라.
침구 정리와 함께 "오늘도 복되게, 즐겁게, 건강하게 소중한 하루 귀하게 삽시다"를 조용히(힘차게) 외치며 동시에 하파이브를 하며 기를 불어넣는다. 이어서 동네 주변으로 가벼운 아침 산책에 나선다. 아침 산책은 보통 삽십 분 정도 걸린다. 가볍게 몸에 기를 불어넣는 정도가 목적이기 때문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선한 아침 공기와 함께 기분 전환을 하면서 오늘의 몸 상태가 어떤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자신을 가볍게 살피고는 한다.
산책에서 돌아와 아침 식사와 함께 마실 커피를 준비한다.
커피를 준비하는 것이 나에게 있어 본격적인 아침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커피에 아침 시작의 방점을 찍는 이유는 오늘의 전투(?)를 예상하고 준비하는 병사의 정신적 완전무장이 완료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의식이 꿈나라를 날아다니다 현실 의식 세계로 막 귀환한 이불속 포근함... 따스함에서 벗어나기를 주저하며 일어나기를 머뭇거리고 있을 때, 마음속 어딘가에서 자동으로 커피를 떠올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어떤 원두가 좋을까?'
'아참... 어제 배달온 게이샤가 있지... 그걸로 하자...'
'드립커피... 아니면 에스프레소...'
'게이샤 원두량이 충분하지 않으니 드립으로 하자.' (에스프레소로 조건 잡다가 아까운 원두 다 날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음속 문답은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몇 초도 걸리지 않는 것 같다.
대표 레시피: 원두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적용되지만...
Recipe 1: 원두 18g (에스프레소 분쇄도)
에스프레소 36g (26초-30초)
따스한 물 180ml 추가
Recipe 2: 원두 18g (드립용 분쇄도)
물 85℃ (54ml) 40초 뜸 들이기: 게 거품 안 나오는 것 기준
물 80ml (1차 드립) + 40ml (2차 드립)
따스한 물 100ml 추가
물이 끓기까지의 몇 분,
가만히 서서 오늘의 기분을 가늠해 본다.
기분에 따라 원두의 선택이 달라진다.
특별한 날을 위해 준비해 놓았던 귀중한(?) 놈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비싼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 값어치를 한다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다.
(세상에 값이 싸고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귀중한 커피일수록 커피를 내리는 방식으로써 드립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에스프레소 추출기로는 약배전 원두의 풍미를 온전히 끌어내기도 어려울뿐더러 원두의 양을 아끼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추출기 조건을 잡다가 한 번 실수할 때마다 20g 정도의 원두가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하여 "비싸고 좋은 약배전 원두는 드립커피로..."가 커피를 내리는 방법 선택의 개인적 기준이다.
내리는 방식은 날마다 조금씩 다르다.
마음이 여유로운 날엔 커피의 풍미를 온전히 즐기고 싶을 때는 드립을 하고, 맛에 더해 커피를 내리는 재미를 더하고자 하는 날에는 에스프레소 추출기를 쓰기도 한다.
에스프레소 추출기는 어른 장난감이자 실험실 장비와도 같다는 생각이 강하다. 결과에 미치는 요인들을 바꿔가면서 커피 맛을 테스트하는 것은 거의 박사과정 때 화학실험을 다시 하는 듯한 재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생각보다 무척 재미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반자동 에스프레소 추출기를 한 대 들여서 홈카페를 꾸며 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완전 자동이나 캡슐커피 머신이 줄 수 없는 무한 재미와 커피의 맛이 기다리고 있으니 적극 시도해 보기 바란다. '스타벅스나 블루보틀 같은 체인점 커피 맛은 저리 가라'로 커피 맛을 만들어 볼 수 있으니 어찌 신나지 않겠는가?
홈 카페를 시작한 뒤, 조금씩 늘어나는 커피 관련 물건들이 주방 영역을 조금씩 야금야금 넓혀가고 있었다.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주방을 거의 다 점령하다시피 하였다. 주방 영역 다투기 전쟁에서 집사람은 진즉에 항복을 선언한 것 같다.
"당신 마음대로 하시라고...."
격려라기보다는 질책성과 포기의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존댓말에서 그 분위기가 더욱 확실하게 느껴진다)
암튼 집사람에게 고마울 뿐이다.
홈 카페의 유일한 커피 손님이기도 하거니와 객관적 비평가이기 때문에 잘 보여야 한다는 긴장감을 놓지않고 있다.
점령한 영역을 원래대로 조금은 되돌려주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아니면 이참에 아예 밖으로 나가서 카페를 하나 차려 버려....)
커피를 내리는 방식이야 어떻든,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커피가 막 추출되기 시작할 때 퍼지는 향기다.
깊고 묵직한 고소함, 볶은 견과류처럼 고요한 향,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배어 있는 산미의 기운....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깨어나는 걸 느낀다.
피곤한 날에도, 설레는 날에도, 어떤 이유로든 커피를 내리지 않는 아침(날)은 매우 드물다.
커피는 단지 카페인을 섭취하기 위한 도구가 절대 아니다. 카페인에 별로 개의치 않는 편이고 그것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은 듯하다. 그래도 카페인에 민감한 유일한 손님인 집사람을 위해 디카페인 원두 한 종을 항상 준비해 놓고 있다.
만족스럽게 내려진 커피와 향기는 오늘이라는 출발선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는 데 도움을 주고는 한다.
마치 바쁘게 오가는 출근길, 신호등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길 건너편을 응시하는 순간처럼 말이다.
집 안과 밖이 아직 조용한 새벽,
식탁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들고 창밖을 바라본다.
아직 세상은 눈을 뜨기 전이다. 어둠이 완전히 물러나지 않은 회색빛 하늘 아래,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멀리서 간간이 들리는 자동차 소리가 아침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나(我)를 실감하기도 한다. (아주 짧은 찰나에... 설명하기 어려운)
커피는 하루의 첫 문장이 되어준다.
마시는 행위는 단순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커피 한 잔에는 ‘여백’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 (여유라는 진부한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
시간이 있어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의지로 만들어 낸다.
커피를 준비하고 마시는 과정으로부터 마음에 여백을 두어 삶을 담백하게 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시간상으로 여유가 있는 날은 오히려 드물지만, 그런데도 커피 한 잔을 위해 특별한 시간상 틈을 내는 이유는 바로 그 여백이 주는 심리적인 위안 때문이다.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나 혼자만 잠깐 멈춰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작은 사치이자 은근한 저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아침 커피를 준비하고 마시는 이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는 아침의 첫 선물’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선물은 소박하지만 정성스럽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척 고귀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기도 하다.
암튼,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한 잔이 나에게 어떤 시간을 안겨주는가이다.
때로는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고, 어떤 날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며 머릿속을 텅 비우는 명상 같은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살아가 보자는 다짐의 시간이다.
커피는 늘 같지만, 커피를 마시는 나는 매일 다르다.
전날 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지, 몸이 피곤한지, 마음이 들떠 있는지에 따라 커피의 맛도 느낌도 달라진다.
같은 원두를 같은 방식으로 내려도, 어떤 날은 지나치게 쓴 것 같고, 어떤 날은 감탄이 나올 만큼 부드럽고 깊을 때가 있다. (이 정도 차이는 분명 어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겠지만)
이것이 바로 커피가 삶을 닮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같다.
늘 같은 방식으로 살아도, 느끼는 감정은 다르고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
매일 아침, 매번 커피를 내리는 손길에 조금씩 더 집중하게 된다.
원두의 분쇄도, 물을 붓는 속도, 추출 시간 등 아주 사소한 것 같지만, 이 조용한 섬세함이 내 하루의 방향을 정해주는 나침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점(占)을 치기도 한다. 원하는 대로 한 번에 잘 되면 오늘 하루 운수대통)
커피를 통해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과언이 아니다.
“커피 없이도 하루는 간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의외로 많아 보인다.)
맞는 말이다. 커피 없어도 일은 하고, 사람을 만나고, 하루를 아무 문제 없이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커피와 함께하는 하루의 의미는 조금 (많이) 다르다. (개인적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만은 아주 다르다)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여유롭고, 조금 더 신중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챙기고 있다’라는 감각이 뚜렷하고 선명해진다.
이것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나 아니면 그 누가 있어 나를 챙기겠는가?... 집사람이 섭섭해하려나?)
살다 보면 하루가 거칠고 무거울 때도 많다.
그런 날엔 아침의 커피가 더욱 간절하다. (꼭 아침 커피일 필요는 없지만)
따뜻한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깊게 한 모금 들이켜는 순간, 커피는 말없이 나를 보듬어 준다.
괜찮다고, 다 잘될 거라고, 오늘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커피는 말하지 않지만, 말보다 진한 내면의 위로를 전한다.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린다.
바쁜 날에도, 피곤한 날에도, 슬픈 날에도, 아무렇지 않은 날에도...
커피는 내게 묻지 않고 믿음직한 친구로 곁에 머물러 온다.
그것이 커피가 가진 가장 따뜻한 힘이다. (개인적인 느낌)
그 힘은, 내가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내일 아침에도 또 커피를 내릴 것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단지 하루를 잘 살아내기 위한 첫걸음으로....
그렇게 오늘도, 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커피를 준비하고, 내리고, 마시는 모든 과정은 나에게 있어 하루를 여는 루틴(routine)이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의식(ritual)에 가깝다.
나 자신과 내면으로 대화하는 시간이며 나 자신에게 스스로 정성을 다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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