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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Oct 15. 2023

일본의 ‘에타(穢多)’와 ‘히닌(非人)’ 들어보셨나요?

<인간에서 제외된 천민계급>

출처 : 다음


  일본 '에도시대(1603~1867)' ‘에타(穢多)’와 ‘히닌(非人)이란 말이 있었는데요.

이는 엄격한 신분제도인 '사.농.공.상' 중에서도 가장 아래의 천민계급을 일컫는 말이랍니다.

    

‘에타(穢多)’ ‘예(穢) ‘더럽다. 지저분하다’는 한자로

즉, ‘더러움이 많은’이란 뜻이니, 힘들고 더럽고 지저분한 일을 하는

가혹한 차별을 받았던 계층의 사람들인 거지요.     


 ‘에타(穢多)’는 중세 이래 '예속민(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백성)'이나

심한 사회변동의 몰락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막번 체제 유지를 위한

봉건적 신분제의 최하층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일본에서는 살생을 싫어하는 불교와 피를 더럽히고 싫어하는 '신도(神道)'의 영향으로

동물 사체를 다루는 것을 꺼리는 사상이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짐승의 '도살처리'나 동물의 '가죽을 벗기는 일' 등, 가죽을 만지는 것들을 혐오했으니

이일을 대신한 것이 ‘에타’였답니다.


혹시 예전의 사형수의 목을 베던 ‘망나니’가 생각나지 않으시나요?

이들은  '동물의 도살' 뿐만 아니라, 각종 '사형'이나 죄인을 잡아들이는 '포졸일, '짚신만들기, 마을 단속, 산지기나 제례의식, 가죽손질'이라는 고정된 신분이나 주거지 직업 등이 고정되어 있었답니다.

   

또한 '가죽손질'은 상당한 냄새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마을 변두리나 강 쪽 등 농업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에도시대 도살은 금지되었으나, 짐승 가죽의 폐 처리부터 가공 또는 가죽제품의

제조판매 등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흘러 피혁관계의 일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직업을 가업으로 독점하기도 했다고 해요.

           

에타가 혈통에 의해 천민계층으로 나뉜 사람들이라면.

히닌(非人)’이란 말도 있는데요.     


출처 : 야후재팬


‘히닌(非人) 단어가 말해주듯 ‘사람이 아니다’란 뜻의 비참한 천민을 일컫는 말이랍니다.


이 말은 원래는 불교에서 나온 귀신 등으로 사람에게 없는 것이 사람의 모습을 빌려 나타난 것이란 말도 있답니다.   

  

또한 생산적인 일에는 종사할 수 없고 구걸 등의 거지로 생활하며,

사형 집행장에서 지저분한 시체 처리 등을 도맡아 했고,

 소나 말의 짐승 '우리(檻·오리)'의 분뇨처리나 잡역 등의 일에 종사했다고 해요.      


그리고 ‘히닌’은 신발을 신으면 안 되었으며, 교제 또한 허락되지 않는 등의 차별을 받았는데요.

'히닌’은 우두머리의 지배를 받고 있어, 그들이 주거하는 작은 집에 살다가,

피차 궁핍한 생활이니 거리로 나와 부랑자가 되었다고 해요.      


한편, 치안을 지키는 등의 사회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일도 했는데요.

현재도 여전히 사회적인 편견이나 부당한 차별이 남아있어 이것을 해소하고자 노력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답니다.      




  '에도 시대(1603~)'가 지나 '메이지 시대(1868~)'가 되면서 신분계급은 사라졌지만, 이들이 사는 지역을 피차별 지역사람들이라 불러 차별했구요.


이들을 부르는 ‘부락민(부라쿠민(部落民)’이라는 집단을 부르는 용어로 ‘부라쿠’가 생겨나기도 했답니다.    

  

부라쿠민’이라는 어원은 ‘피차별 부락민’이라는 '히사베츠 부라쿠민(被差別部落民)'의 일본어의 줄인 말로, 부락민을 ‘부라쿠민(部落民)’이라고 말한 것이지요.


이말 역시 일제의 잔재라 생각하니 좀 떨떠름한데요.     

 '부락'다른 차별 집단과는 달리 특이하게도 피부색이나 인종 민족 종교 문화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차별을 받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이유 없는 차별’이 라 볼수 있겠네요. .

    

이 모든 것들은 지배자들의 신분제도를 확고히 유지시키기 위함이었으니,

일본의 철저한 백정 천민 취급의 신분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라쿠민(部落民)'들은

그 집단에서 밖으로 나올 수도 없으며 결혼도 부족과 혼인하며 계속 천민계급으로 살아가야 했는데요.


현재 ‘야쿠자의 70%가 부라민’ 이라는 얘기도 틀린 말도 아니겠네요.     


지금도 여전히 ‘부라쿠(部落) 출신'이라면 결혼과 취업에 제한을 받는 일이 있다고 하는데요. 미리 결혼상대의 집에 ‘부라쿠’였다는 '출신'을 밝혀야 될지의 고민이 많다는 걸 보면, 여전히

차별이 남아있다는 반증이 되겠네요.     


또한 취업에도 차별이 존재하는데요.

기업들은 지원자가 ‘부라쿠 출신’임을 알게 되면 서류상에 표시를 해두고 불이익을 주었다고 합니다.


출처 : 다음


  이러한 ‘부라쿠’ 문제로 '2021년 9월 재판'이 열렸는데요. ‘부라쿠의 위치를 알려주는 책과 사이트를 금지하는 처분에 관한 재판'이었다고 해요.


당연히 출판금지와 인터넷상의 삭제명령이 내려졌다고는 하지만, 이런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아직도 피차별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반증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겠죠.

    

1871(메이지 4년)에 신분은 폐지되었지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당한 차별은 이어지고 있는데요.    

 

일본의 뿌리깊은 여러 악습이 사라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네요

이것은 일본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볼수 있겠는데요.


 ‘혼네와 다테마에’의 민족, 즉, 이것은 ‘다테마에(建前·표면적인 양심)’라는 마음과 ‘혼네(本音·속마음)’라는 이중적 양심의 발로이며, 선진국이라는 이미지 타격을 우려한 창피함 이라는 ‘하지(恥·수치)’라는 수치문화에서 나온 결과는 아닐까요.     

 문화는 역사를 바꿔놓을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는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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