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7할이 산림으로 덮힌 ‘나가노 현(長野県)’ 깊은 오지 산골에서는 이런 일이 실재했고,
‘나가노 가미하라 마을(長野 神原村)’이 그중 하나였다 하는데요.
이 마을에서는 이러한 제도가 16~17세기경부터 수백 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장남만이 오로지 가족을 승계했고, 나머지 아이들인 ‘오지로쿠’나 ‘오바사’ 들은 장남을 떠받들고 죽을 때까지 혹사당하며 장남을 위해 노예처럼 살다 생을 마감했다고 해요.
평생 장남과의 종속관계를 유지했던 것이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조차도 금지되었고, 말을 걸어도 대답도 하지 않았으며 화내지도, 웃지도 않고, 무뚝뚝하고 취미도 없는, 단지 가족만을 위해 일하며 불평조차 없이 일을 했다고 해요.
물론 결혼도 허락되지 않았는데요.
부모들은 오로지 장남을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다지 다른 자식들은 안쓰러워 할 것도 없었다고 하네요.
그들의 일생은 오로지 장남을 위해 목숨을 바쳐 죽을 때까지 일을 하며,
장남의 노예로 밖에는 살아갈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취급을 당해서인지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갖지 않고,
오로지 히키코모리와 같은 내성적인 부류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풍습이라 해도 모든 가정에서 이런 관습을 믿고 당연한 듯 받아들였던 것은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겠는데요. 더 큰 충격은 이들의 태도에 있다라는 겁니다. 이들은 이 규칙에 순응하며 집을 나가는 일도 마을을 떠나려는 사람도 없었다고 해요.
출처 : 야후재팬 (2023년.3월.11일. 자택에서 95세로 별세)
'메이지 5년(1872)년'에는 인구 2천 명의 마을에 190명,'쇼와 40년(1966)'에 들어서는‘오지로쿠(おじろく) 2명. 오바사(おばさ) 1명이 현존해 있었다고 하네요.
이들의 상황을 기록 보고한 <‘콘도렌지(近藤廉治 『精神医学』1964年6月号)의 레포트>에 의하면,
현존하는 이들을 취재하고 정신상태를 진단해 본 바, 이들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무시로 일관했기 때문에, 최면 진정제를 투여해 면접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첫째, ‘여자인 (오바사)’는 "자신은 바보라서 글도 못 읽고 말도 못하며 열등감을 갖고 있었으며 놀러 간 것은 어려서 한번뿐이었고, 죽은 언니의 장례식에 갔을 때도 무덤덤했으며 눈물도 없었다"고 증언했다고 하네요. 오랜 시간 메마른 감정으로 오로지 가축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 같은데요.
둘째 ‘남자인 (오지로쿠’)의 증언으로는, "철이 들 때 까지는 장남과 똑같이 자랐으나 사고가 가능한 나이가 되면서 장남을 따르도록 훈육 받았으며, 이를 어기면 호된 야단을 맞았다"고 증언했답니다.
부모들은 장남 이외에는 형을 도와 집안을 번창시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에 부모는 거부감을 가졌던 것 같구요.
이렇게 자라서인지 감정에 둔하고, 모든일에 무관심하고 말이 없으며, 사람을 꺼리고 자발성 역시 없으며, 모든 것을 체념하고, 순응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 어떤 반발도 없이 다만 보잘 것 없는 아웃사이더였다는 것 뿐, 이것이 이들을 살펴본 결과였다고 하네요.
아무리 봉건제도의 틀 속에 살아왔고, 아무리 장남만을 위한 세상이었다 해도 이런 관습이 '쇼와 40(1966')까지 있었다니, “노예 12년”이란 영화를 연상케 하네요. 그것도 가정 안에서의 일이었다니, 인간의 존엄성 운운하는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