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을 찧고 있는 사람이 ‘오다 노부나가’이고 절구 안에 손을 넣고 있는 사람이 그의 신하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수)’랍니다. 참고로 ‘아케치’는 ‘혼노지(本能寺)의 변’을 일으켜 ‘오다노부나가’를 죽게 한 신하로 지금까지 배신의 아이콘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후 마지막 일본을 완전 통일한 사람이 ‘정유재란’을 일으킨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지요. 그의 생김새를 두고 ‘원숭이’란 말을 하는데요.
반죽을 하고 있는 원숭이 같이 생긴 사람이 바로 ‘도요토미’랍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을 완전 통일한 자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이죠.
오른쪽 위에 앉아서 혼자만 투구를 쓰고 맛있게 떡을 먹고 있는 사람이 ‘도쿠가와’랍니다.
그럼 왜 세사람의 성정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새도 많았을 텐데, 하필 ‘호도토기스(불여귀.두견새)’라는 새를 붙였을지 궁금하실 것 같은데요.
출처 : 네이버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도 이런 노래가 실려있듯이 이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이 있답니다.
"한 장군이 어느 봄날, "호도토기스 우는 소리가 듣고 싶다"고 말을 했고, 당시 전국시대 장군의 말은 절대적이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하인 한명이 호도토기스를 대령했지만 울지를 않아 꾸중만 들었다고 해요. 화가난 장군은 다른 하인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고, 역시 마찬가지로 새는 울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만약 ‘오다, 도요토미, 도쿠가와’ 이 세 장군과 상의한다면 어떤 답이 돌아올것이라 생각해서 이런 가사의 노래가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야후재팬 ‘하마지마 쇼텡(하마시마서점. 浜島書店)’의 한 웹사이트에서도, '에도시대 후기(戸時代後期)'에 생긴 이 노래가사를 예로 들고 있는데요.
이 노래는 '히젠(肥前) 국 '나가사키현(長崎県)'의 '히라도 번주(平戸藩主)'인 '마쓰우라 시즈야마(松浦静山)'의 수필 <고시야와(甲子夜話.こうしやわ)>에 쓰여져 있는 것으로, 1821~1841년에 걸쳐 완성된 책이라 합니다.
"울지 않으면 죽여 버릴 터이니 시조야. 織田右府(織田信長)
울리지 않으면 울려 보이마 두견새야. 豊太閤(豊臣秀吉)
울지 않으면 울 때 까지 기다리마 곽공이여. 大権現(だいごんげん)様(徳川家康)"
이런 배경으로 만들어진 두견새 울리는 방식은, 3명의 장군의 성격을 잘 묘사해 놓고 있으며, 이후 호도토기스의 이름 또한, 자귀, 두견, 망제, 불여귀, 귀촉도 등 다양하게 부르게 되었답니다.
일본 문학에서 ‘호도토기스(두견새·불여귀)’는 ‘돌아가고 싶다’는 처절한 의미로 자주 등장하는 새인데요.
중국의 유래를 보면, 중국 촉나라의 망제가 한을 품고 죽게 된 '호도토기스'가 이름을 바꿔서 ‘불여귀’라 했으며, 이런 이유로 '불길한 새', 또는 '좋지 않은 것'에 비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입안이 빨간색인 이유도 피를 토한다는 말을 듣게 된 요인 중 하나랍니다. 구슬프게 계속 울기도 해 심상치 않은 두려움을 느끼게도 했다는데요.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는 ‘불여귀’라 붙여져 한이 많은 불운한 새라는 인식이 강하답니다.
출처 : 네이버(다카하마 교시)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俳句)’ 시인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1867~1902)’는 결핵으로 피를 토하고 죽을 것을 예견하며 자신의 필명을 ‘자규(子規)'의 일본어 '시키(호도토기스.불여귀)’라고 지었으며,
일본의 장편소설 <불여귀(1898)> 역시, 해군중위에게 시집을 갔으나 남편은 청.일 전쟁과 항해생활로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폐결핵으로 몸이 쇠약해지자 시어머니에게 쫓겨나 요양을 하며 남편을 기다리다가 결국 남편을 보지 못한 채, 죽어간다는 불운한 내용으로 유명하지요. 이 레퍼터리는 '가부키'나 '연극' 무대에도 자주 오르고 있는데요.
수필집에 들어있는 글이 노래로 전해지고, 그것이 일본의 세 장군의 성격을 '호도토기스'에 비유에 이미지화 된 것으로 생각할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