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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Nov 05. 2023

일본 영화 :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슬프고 아름다운 인생이야기>


1. 영화 속 ‘앙꼬’가 갖는 의미

출처 : 야후재팬


“앙: 단팥 인생이야기(2015)”‘도리안 스케가와(ドリアン助川)’의 장편소설을 소재로 만든, 전통 단팥빵인 ‘도라야키(鑼焼)’를 파는 작은 가게에서 최고의 ‘팥소, 즉 ‘앙꼬(餡子)를 소재로 삼아 일어나는 잔잔하고 슬픈 감동영화인데요.      


여기서 ‘도라야키(鑼焼き)’의 ‘도라(鑼)’는 ‘징’, ‘야키(焼き)’는 ‘굽다’는 뜻으로, 밀가루 반죽을 동글납작하게 구워 그 사이에 팥소를 넣어 만든 일본 과자를 말합니다.  

    

우리 속담에 “앙꼬 없는 찐빵”이란 말이 있지요.  찐빵의 맛은 ‘앙꼬’라는 본체의 역할로 좌우될 수 있으니, ‘앙꼬’는 사물의 으뜸이며 핵심이라 할 수 있겠네요.      


때문에 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앙꼬.餡こ(팥소)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보물이 되는 셈인데요.


영화는 앙꼬 같은 주인공인 할머니의 삶을 통해, 삶을 대하는 정성과 믿음,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동시에  할머니의 성실함은 우리 인생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구요.   


특히, 이 작품으로 2018년 타개한 주인공 역할인 명배우 '기키기린(樹木稀林)'이 제9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리 어워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지요. 작품에는 도라야키 가게 주인인 '센타로(나가세 마사토시)'가 등장하는데, 그는 순간의 실수로 감옥에 다녀온 과거가 있는 인물이예요.   

   

한편,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병에 걸려 세상을 등지며 삶의 아픔을 안고 살아온 할머니 ‘도쿠에(기키기린)’. 그리고 가난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소녀 '와카나(우치다 카라)'가 등장합니다.      

이 세 사람의 삶은 잘 팔리지 않는 ‘도라야키’ 가게의 도라야키의 슬픈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지요.      


영화는 일본의 70~80년대 버블경제의 활력에서 급 다운된 현재 상황을, 전 연령대인 70대, 40대, 20대라는 다양한 인물을 설정함으로써, 당시(1996~2000년 추정) 불황을 겪고 있는 대상이 특정인만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비록 이들의 삶이 완벽하진 않지만 각자 상처를 짊어진 그들은 서로를 향해 말없이 상대를 어루만져주며 위로하고 위로받는 치유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요.    

      


2. 작품 속 따뜻한 이야기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는 ‘도라야키’를 파는 가게 주인 '센타로(나가세 마사토시)'에게 자신의 몸도 건사하지 못할 정도의 할머니 '도쿠에(기키기린)'가 찾아오고, 센타로는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를 채용하게 되는데요.      


그러자, 도라야키의 팥소 맛을 제대로 살리는 할머니 덕분에 가게 매상은 늘어만 가고,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던 단골소녀 ‘와카나(우치다 카라)’가 할머니의 구부러진 손을 보며 할머니의 병명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당시 나병은 격리가 원칙인 병으로 가까이하기를 누구나 꺼려하는 불치병 이었지요.          


‘와카나’는 자신의 엄마에게 할머니의 과거병명을 알리는 실수를 하고, 이 사실을 엄마는 건물주에게 알리고 이를 알게 된 건물주는 ‘센타로’에게 할머니를 내보내라 명령하는데요.     


가게주인 센타로는 할머니의 팥소 만드는 솜씨 덕분에 가게가 번성하고 있다며 건물주를 설득하며 하루하루 날짜를 늦추게 됩니다.  집주인과 할머니 사이에 깊은 고민에 빠진 센타로는 팥을 대하는 그간 할머니의 진심을 저버릴 수 없어 시간만 보내게 되는데요.

   

출처 : 야후재팬


  센타로가 처음 할머니를 만난 건, 벚꽃이 만발한 어느 봄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평소 센타로는 습관대로 낡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우며 하루를 맞이하는데요.     

하지만 그의 눈에 하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밖의 풍경은 타성에 젖은 그에겐 아무런 감흥이 되지 못했죠.      


다만 다른 날과 같이 담배연기만 내뿜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내려와 다시 어두컴컴한 가게 안으로 들어서고는 커튼을 열고 밀가루와 계란을 꺼내어 하루 장사 준비를 시작하는데요. 이 때, 철로 위 전철이 지나가는 정겨운 소리와 벚꽃 길 사이로 할머니 한 분이 걸어와 ‘도라야키’ 간판 앞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할머니는 하늘을 보며 깊은 호흡으로 맑은 공기를 들이쉬며, 바람에 흔들리는 벚꽃을 보며 이른 봄의 정경에 한껏 취해있는 모습인데요. 가게 밖에 붙은 아르바이트 광고를 본 할머니는 채용을 부탁하게 되지요.

 

나이를 묻는 말에 76세라 말하는 할머니. 할머니는 시간당 아르바이트비가 600엔이지만, 반값이면 충분하다 말해보지만 한 번에 거절당하는데요.

할머니는 미안한 듯 도라야키 하나를 내미는 센타로를 보며 돈을 지불하려 하나 센타로는 공짜라며 할머니를 돌려보낸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벚꽃을 심은 주인을 아느냐며 수줍게 말을 건네도 보고 하는데요. 왠지 외로워보이는 안타까운 할머니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된답니다.


 하지만 무뚝뚝한 사장 센타로의 표정에도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발걸음을 돌리게 되는데요. 그리고 두 번째 그곳을 찾아온 할머니는 자신이 만들어온 팥소를 건네고, 이것을 받은 센타로는 할머니에게 팥소를 받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말죠.  

   

가게 안은 텅 비어있고 문득 센타로는 쓰레기통에 버린 팥소에 눈길이 가게 되죠. 쓰레기통에 던져놓았던 팥소의 맛을 본 센타로는 그 맛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찾아온 할머니에게 채용을 허락한답니다.      

이런 과정으로 할머니는 그곳에 취직을 하게 된답니다.


출처 : 네이버


사장의 허락에 뛸 듯이 기뻐하던 할머니는 이른 아침 일찍 가게에 도착해 팥을 삶으면서 팥과의 대화를 시작한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센타로가  연유를 묻자 할머니는 단팥을 만들 때 나는 항상 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것은 팥이 보아왔을 비 오는 날과 맑은 날들을 상상하는 일이지요.” 할머니가 사장에게 읊어주는 수줍은 대사는 일흔의 나이로 생각되지 못할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런 표정이었죠.  


팥알을 고르고, 팥을 물에 불리고, 팥을 끓이는 내내 팥과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할머니. 할머니의 팥소 만드는 솜씨는 50년의 장인정신의 깃든 기술이기도 했답니다.    

  

그 동안 공장에서 나온 팥소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할머니가 손수 만든 팥소 맛은 인기를 더해가고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는데요. 사장인 센타로는 할머니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을 도라야키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노라고 고백한답니다.


자신이 만든 것을 맛조차 보지 않았다는 센타로에게 할머니는 술을 좋아하기에 술집을 했어야 한다는 농담까지 주고받으며 서로는 가까워지는데요. 이제 센타로는 할머니가 사물을 대하고 있는 것에 진심이라는 것을 이해하며 크게 감동하게 되죠.


센타로는 가게 안에 들어온 여학생들의 재잘거림을 참지 못하고 내몰기도 하는 차가운 인물이기도 한데요.      


그리고 외톨이로 찾아와 조용히 앉아있던 ‘와카나(우치다 카라)’에게는 도라야키를 실패작이라며 싸주는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센타로와 와카나, 두 사람의 어두운 성격과 할머니의 쾌활한 성격은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요.  마치 벚꽃으로 환한 밖의 모습과 가게 안의 어두운 모습의 극명한 차이와 같다고나 할까요.    


이와 같이 가게안의 어둠은 주인 센타로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센타로는 과거 싸움에 휘말려 폭행죄로 수감 후, 어머니의 임종조차 보지 못한 채 출소했고, 자신이 진 빚을 건물주가 갚아준 이유로 도라야키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집주인의 하수인에 불과한 거였죠.     


반면, 할머니는 자신과 만나게 된 모든 것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며, 주변의 모든 자연이 친구를 대하듯 하는데요. 팥소를 만들 때도, 비바람을 견뎌왔을 팥의 여행과정에 귀를 기울이고, 할머니가 팥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결국, 단골소녀 와카나의 실수로 인해 우연히 할머니가 앓았던 과거의 병명은 빠른 소문으로 번져가고 가게를 찾는 손님의 수는 급속히 줄어들고 할머니는 그곳을 떠나게 되는데요.     


할머니가 떠난 텅 빈 가게에 할머니의 빈자리는 크게만 느껴지고, 할머니를 내보내자 했던 건물주 아주머니는 센타로에게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조카와 함께 장사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명령이었죠.      


가게안은 조용하고 이렇게 센타로가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단골소녀였던 와카나는 자신으로 인해 할머니가 떠난 것을 고백하며 센타로와 함께 할머니를 찾아가면서 할머니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출처 : 네이버



할머니를 찾아가는 길은 빽빽한 나무숲 사이를 통과해야만 했고, 그곳은 ‘나병(癩病)’ 즉 ‘한센병(Hansen病)’환자들을 격리시킨 곳이었답니다. 교도소를 나와 사회에서 격리된 센타로나, 학교에서 따돌림 당했던 와카나, 나병으로 생활해온 할머니, 모두는 사회에서 격리된 공간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렇게 작품 속 모두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었던 것이었죠. 할머니가 사는 곳에 도착한 그들은 ‘나병’으로 코가 뭉그러지고 관절이 구부러진 사람들만이 보였지만 센타로와 와카나는 그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되는데요.


그리고 할머니를 만나고 돌아온 얼마 후 할머니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다시 센타로와 와카나는 그곳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남긴 할머니의 녹음기 속 음성을 듣게 되지요, 처음 가게를 찾아갔을 떼 센타로의 모습은, 자신이 이곳에 격리되면서 평생 담장 밖으로 못 나간다고 생각했을 때의 자신의 예전 모습을 보는 듯, 너무나 슬픈 모습이었기에 자꾸 이끌려 찾아가게 되었다는 할머니 음성이 흐르고 있었죠.     


그리고 할머니의 방에는 온통 센터로와 도라야키, 와카나의 사진이 빼곡했구요. 나병으로 인해 국가는 자신에게 아이를 낳을 자유도 기회조차 빼앗았기 때문에 할머니는 이 두 사람을 자식같이 사랑했던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유골은 그곳 규정대로 할머니가 좋아했던 벚꽃나무 아래 뿌려져 있었구요.     


우리 사장님, 잊지 마.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할머니는 이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떠나갔고  영화는 다시 벚꽃 만발한 넓은 공원에서 “도라야키! 도라야키!”라고 힘차게 외치는 센타로의  목소리와 벚꽃 같은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니다.     


환하게 핀 벚꽃과 활짝 웃는 할머니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한편의 영화였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감상을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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