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닐하우스』 (2023.07)는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면서 눈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 태강(양재성)과 치매를 앓고 있는 그의 아내 화옥(신연숙)을 돌보는 요양보호사 문정(김서형)의 삶을 중심으로, 노인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이야기한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감상한 영화였지만 시작은 이미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노인문제를 다룬 영화였기에 더욱 눈길을 끌었다.
수명이 늘어나고 고령화가 지속됨에 따른 노인문제는 옆 나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그 심각성이 대두된 지 오래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현대판 고려장과 같은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子)』(1983)가 상영되었고, 노인 안락사 문제를 다룬 영화 『플랜 75』(2022)가 상영되어 화제가 되었었고, 오래전 『개미』 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단편집 「나무」(2013) 속 <황혼의 반란>을 통해 노인문제를 다룬 바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작고한 ‘윤정희’ 배우가 마지막 열연했던 영화 『시(詩)』에서도 간병인의 문제와 함께 노인성 치매문제를 다뤘던 바, 이와 유사한 『비닐하우스』라는 영화는 급속히 진행되어가는 고령화에 따른 개인의 치매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감독(이솔희)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2. 영화『비닐하우스』줄거리
영화는 비닐하우스에 살며 미국에 자식을 둔 노부부를 돌보는 요양보호사 ‘문정(김서형)’의 정성어린 간호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노부부의 요양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 화옥이 갖고 있는 폭력성이다. 영화에서 그녀의 폭력치매는 사건에 불을 붙이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출처 : 네이버
반면 할아버지 ‘태강(양재성)’은 시력은 잃었지만 지식인의 모습을 갖춘 신사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태강 역시 서서히 치매가 진행될 것이라는 의사 친구의 말을 듣고 혼란을 겪으며 고뇌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요양보호사인 문정은 오로지 일한 대가로 돈을 모아 소년원에 있는 아들 ‘경일(남연우)’과 함께 할 미래를 꿈꾸며 아들이 출소할 날만을 기다리며 두 노인의 간병 일에 전념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러나 어느 날, 문정 앞에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할아버지가 외출 한 후 할머니의 목욕 일을 돕던 문정은 치매 할머니의 폭력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할머니가 욕실 바닥에 넘어지면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황한 문정은 급히 119에 신고를 하려고 전화기 버튼을 누르지만 그와 동시에 소년원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그동안 엄마와 살기를 거부해왔던 아들이었지만 출소 후 같이 살자는 전화기 너머 아들의 목소리는 문정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충분했다. 이 얼마나 기다리던 말이었던가.
이 말을 들은 문정은 태도를 바꿔 피가 흥건한 욕실 바닥을 서둘러 치우고 할머니의 시체를 이불로 감싸 자신이 사는 비닐하우스로 옮겨 장롱에 숨긴다.
이불에 말린 할머니의 시체를 욕실 밖으로 끌고 나왔을 때 외출했다 돌아온 할아버지 태강의 서성거림의 숨 막히는 스릴은 잊을 수 없는 신으로 남아있다.
이불에 말려 삐져나온 아내의 발가락이 닿을락 말락한 순간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음악을 트는 태강의 모습엔, 한편의 안도감과 아내의 죽음도 지나칠 수밖에 없는 태강의 안쓰러운 모습이 중첩되는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이 부분부터 영화는 반전을 거듭하는데, 그간 문정에게 보였던 성실한 요양보호사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고 영화는 반전의 스릴러 물로 바뀌게 된다.
아들 생각에 이 사건을 무마시키고 현재 생활을 유지해야 했던 문정은 친정엄마를 떠올린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속이는 일은 요양병원에 있는 자신의 친정엄마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친정엄마 역시 오래된 치매환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을 못 보는 할아버지는 무언가 수상쩍음에도 자신에게 치매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음을 의심하며 집안에 하나뿐인 할머니를 자신의 부인이라 생각하기에 이른다. 부인을 더듬는 촉각의 낯선 반응도 자신에게 닥친 치매 증상의 일부라 믿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희망의 끈을 놓은 태강은 할머니 즉, 문정의 친정엄마 목을 조르고 자신도 자살을 감행한다. 미리 대문 앞에는 119에 신고하라는 유언의 메모를 남긴 채 말이다.
목을 조를 때의 비명 역시 분명 아내의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상태조차 알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비관과 함께 부인을 먼저 보내고 스스로의 생을 마감한다. 자신의 손으로 아내를 보내는 모습은 프랑스 영화 『아무르』(2012)에서 느낀 처절한 남편의 내적 몸부림과도 흡사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모르는 문정은 할아버지에게 일하며 받은 돈으로 아들과 살 집을 구해놓고 아들이 출소하기만을 기다리며, 출소 하루 전, 사건을 은닉하고자 할머니의 시체가 들어있는 장롱주변을 중심으로 비닐하우스 전체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다.
한편, 출소 날보다 하루먼저 소년원을 나온 아들은 친구들과 비닐하우스에서 과자파티를 즐기고자 숨어들었고, 엄마 문정이 오는 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급히 하우스 뒤편으로 몸을 숨긴다.
거칠게 뿜어내는 불꽃이었지만 밖으로 튀어나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멀어져가는 문정의 등 뒤로 하우스의 불꽃은 거세어만 갔다. 활활 타오르는 비닐하우스를 보며 밖으로 나온 그녀였지만 사실은 더 끔찍한 사건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였다.
3. 영화 『비닐하우스』감상평
이렇게 영화는 순간의 실수가 얼마나 인생을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가의 문제를 보여준다.
문정의 심리상담치료에서 만난 ‘순남(안소요)’ 역시 폭력과 성적 착취를 당하는 캐릭터로 영화 속 인물들은 검은 비닐하우스와 같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두운 삶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영화 속 사건들이 실감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이거니와 이런 끔찍한 사건들이 치매 노인문제가 심각한 요즘, 지극히 현실적으로 우리 가까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을 가진 모정의 문제와 치매부모를 돌봐야 하는 현실과, 부모를 떠나 타국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는 자식들, 이 모든 상황들이 당장 내 주변에 흔히 있는 일들이기에 영화가 갖는 공포감이 어떤 영화보다 스릴 넘친다.
이렇게 『비닐하우스』의 인물 모두는 각자의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고 있는 인물들이다. 앞을 볼 수 없으면서 치매가 진행되어가는 할아버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치매가 진전된 두 할머니, 가난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주인공과 미래가 불투명한 소년, 이들 모두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에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강력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