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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Dec 04. 2023

강의하며 만났던 사람들의 안부

<무진기행 김승옥 작가의 가족>

  강의하는 장소마다 다르지만, 어느 곳에서는 수업 전 일본 노래 한 곡을 틀어놓는다. 영상에 일본어가 없으면 미리 자막편집을 해 넣고, 한국어 자막이 없으면 한글 자막을 넣어 수업자료와 함께 USB에 저장해 놓는다.      

강의실에 도착하면 우선 타이핑 해온 것을 인원수대로 복사한 후 배포한 다음, 한두 번의 노래를 들려주고 가사의 의미와 한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 등을 설명한다. 노래는 운율을 맞추기 위해 원곡의 단어가 축약됐거나  직역의 번역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니 노래교실을 연상케 하는 것 같지만 모두 일본어를 돕기 위한 약간의 노력이다.     

이런 작업 뿐 아니라, 문화나 그 외의 것들이 떠오를 때도 피피티 작업을 하고 나름 알맞은 그림들을 편집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보여주곤 한다.      

아무튼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 왠만한 자료는 다 갖고 있는 자료부자가 것 같다.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다른 곳에 있다. 2년 전쯤인가 내 추억이 서린 이곳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개설했고,  일본의 유명한 ‘사다마사시(佐田雅志.1952~),란 가수가 작사하고 부른 <관백선언>이란 곡을 틀어주었다. 관백(関白)은 천황을 보좌하는 관직으로 우리나라 국무총리 정도쯤 되는 권력을 갖고 있는 직위이니,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선언한다는 뜻이다.      


자신에게 시집올 여자에게 대체 어떤 권력을 휘두르겠다는지 노래가사부터가 일단 심상치 않다.      

‘사다마사시’라는 천재 작가의 이 노랫말은 한 때 여자를 너무 하찮게 본다는 가사말 때문에 금지곡이 되어야만 했다.   


결혼할 상대에게 “나와 결혼하기 전 말해둘 게 있다”라는 으름장으로 시작하는 가사는 가히 결혼이 아니라, 한 남자의 수발을 들러 들어가는 형국이다. 시어머니 시집살이 정도는 애교라 할 정도이다. 결혼생활에서 있었던 일은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벙어리 3년, 귀머거리에 3년과  같이 말하지도(言うな), 듣지도(聞くな), 보지도 말라(見るな)는 엄포까지 놓는다.

     

그리고 15년 후, 그 가수는  <관백선언(関白宣言)> 에 이어, 그 2부쯤 되는 <관백실각(関白失脚)>이라는 가사를 써서 발표한다. 제목에서 보다시피 그 관백은 지금의 국무총리 정도의 권위로 그 권력이 실각된 상태이니, 이제 남편의 권위란 것은 속절없이 땅바닥으로 추락해 있다.     

 

출근길 한손엔 '지하철 티켓', 또 한손엔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처지로, 남들은 뭐라 할지라도 자신은 행복하다 외치고 있다.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오지만 강아지와 둘뿐. 찬밥을 렌지에 돌려먹는 등, 그 조차도 없으니 찬밥 정도는 좀 남겨 달라고 애원한다.

아빠처럼 되지 말라고 하는 마누라의 잔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며 그래도 자신은 가족을 위해 헌신해 왔다고 목놓아 외친다.      


마침내는 먹고 자고 누워 홈쇼핑에 불어나는 살을 빼겠다고 체중계에 올라가는 부인을 향해 제발 쇼핑 정도는 몸을 움직여 줬음 좋겠다는 걱정아닌 걱정까지 덧붙인다.      


이 노래가 ‘아메리카 갓 탤런트’란 프로에도 소개되었고, 노래 한 곡에 한 남자의 인생 전체가 녹아있는 이 노래는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 노래를 듣는 외국인들이 눈물을 흘리고 웃고를 반복하는 영상을 보고 그 곳에 자막을 입혀 학습자들에게 틀어준 것이다.

   



  2년 전 그 노래를 들었던 연세 많으신 한 분은 한 학기를 끝낸 후 문자 한통을 보내 왔다. 노래 말미에 마지막 그가 외친 “간바레(힘내!), 간바레(힘내!), 간바레(힘내!)”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지금 생각하니 아마 당시도 건강이 안 좋으셨던 건 아니었을까. 지금은 잘 지내고 계신지 몹시 궁금하다. 인사라도 드릴까 연락처를 찾아봐도 반복되는 새로운 학습자들의 단톡개설에 밀려 지워진지 오래이다.    

  

언젠가는 일본 문학작품 몇 편을 소개한 날,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분도 복도 끝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계셨다. “다음엔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네?".


일본어를 배우는 학습자들은 문학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해 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전공이기에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기에 전공자로서의 욕심으로 몇 마디 내뱉고는 있지만 말이다. “그 작가를 아시나요?” 나는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은 어렸을 때 잠깐 일본에 사신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무진기행 읽어보셨나요?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이 바로 제 친형님 입니다”

“아. 그런 훌륭한 분을~~”.     


그리고 며칠 후 김승옥 작가님과 동생, 삼남매의  다정스런 모습이 나란히 찍힌 사진 한장을 보내오셨다.

그 사진을 보니 세월이 얄미울 정도로 연로한 모습들에 마음이 찡해왔다.

   

이어령 교수 조차도 칭찬해 마지않던 김승옥 천재작가. 전라도에 있는  문학관에 가면 두 분을 뵐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 그친 시간이 벌써 일주일을 넘기고 있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문학사의 위상을 높인 김승옥 작가와, 내 미흡한 강의를 경청해 주셨던 동생분의 안부가 궁금한 요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zYH5xHIb8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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